▲ 안재휘 논설윈원
▲ 안재휘 논설윈원
호세프(Rousseff)는 2010년에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돼 ‘빈곤퇴치'를 내세운 좌파정권을 이어갔다. 그녀는 그러나 2014년 재선 당시 경제적자를 숨기기 위해 국가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2016년 8월31일 브라질 상원의회에서 탄핵되고 만다. 그런데 최근 그녀의 정치적 스승인 노동자 출신 룰라(Lula) 전 대통령도 재임시절 거액의 아파트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세계적인 충격이다. 구두닦이 소년, 철강 노동자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은 좌파 노동자당(PT)을 이끌며 2002년 대선에서 승리, 브라질 사상 첫 좌파정권을 탄생시켰다. 과감한 중도 실용노선을 채택,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경제를 회생시키며 연임에 성공했다. 2010년 말 퇴임 당시 지지율이 90%에 육박했던 브라질의 영웅이다. 그는 호세프를 키우고 밀어서 정권재창출에 성공했었다.

사실상 중남미 전체가 초대형 뇌물사건에 휩싸여 있다. 세계적인 건설사에 연결된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이라는 초대형 비리의혹에 브라질에서는 3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페루에서는 4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연루됐다. 콜롬비아에서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까지 뇌물을 받았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무려 168명이 구속되고 3조7천700억 환수가 결정됐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잔인한 4월에 상상조차 못하고 살았을 참담한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비선실세’와 함께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유로 헌정사상 처음 파면된 박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징역 24년의 중형과 벌금 180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중형선고에 대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반응이 의미심장하다. 홍 대표는 법원선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 1원 받지 않고 친한 지인에게 국정 조언을 부탁하고 도와준 죄로 파면되고 (대통령이) 징역 24년 가는 세상”이라고 밝혔다. 홍 대표는 이어서 “자기들은 어떻게 국정수행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며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도 했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들이 잇따라 영어(囹圄)의 몸이 된 현실은 자연스럽게 최근 정치권의 핫이슈인 ‘개헌론’과 맞물린다. 전직 대통령들의 사법처리를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정치권은 개헌론 출발선상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이름에 걸맞는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 대통령 국정농단을 영구히 끝낼 수 있다.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어차피 관행과 욕망의 포로들이니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와 풍토를 그냥 둔 채 대통령 4년 연임제 따위의 장치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논의의 핵심을 비켜가서는 안 된다. 4년 중임제가 선(善)이고 책임총리제가 악(惡)이라는 독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말은 백번 옳다.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둥(毛澤東)은 1927년 난창봉기 실패 후 “모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군권(軍權)이 권력창출의 핵심이던 암울한 시절에나 공감을 얻던 이 말은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권력은 국민들의 투표로부터 나온다”는 말로 대체됐다.

그러나 작금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사태들을 지켜보노라면 “권력은 쓰레기통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권력들은 정적의 쓰레기통 뒤집어엎는 일에만 온통 열중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인간의 삶이 어차피 쓰레기를 만드는 일에 불과할 터이니, 어쩌면 이 정의(定義)는 오래도록 유효할지 모른다. 브라질의 룰라와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체포영장을 발부한 사법당국을 향해 목청껏 ‘음모론’을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