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현 종

흔히 한 장의 백지가

그 위에 쓰여지는 말보다

더 깊고

그 가장자리는

허공에 닿아 있으므로 가없는

무슨 소리를 울려 보내고 있는 때가 많다

거기 쓰는 말이

그 흰 종이의 숨결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상품이고

허공의 숨결로 숨을 쉰다면

명품이다

백지의 가장자리가 허공에 닿아있다는 한 줄의 시가 이 시의 중심을 꿰뚫고 있음을 본다. 말을 아껴 써야하는 장르가 시라면 백지가 품고 있는, 허공에 닿아있는 엄청난 침묵의 울림을 시인은 인식한 것이다. 허공의 숨결이라는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봄직한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