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공약 명분에 갇혀
국회 통과 불가능 뻔한데도
26일 발의 고집, 비난 자초
표결 불참 운운 한국당도
국민과의 약속 어긴 `원죄`
`국민을 위한 개헌`이 본질
선거 의식 정략적 접근 대신

문재인 대통령이 6·13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 의사를 밝히며 개헌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앞날이 순탄치 않다.

개헌안 발표로 오히려 정치권의 여야 공방이 더욱 격화되면서 국회 차원의 개헌 합의안 도출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대로는 정국 경색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는 지난 20일 헌법 전문과 기본권 전문을 공개하며 부마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항쟁 등 민주화운동의 이념을 담았다. 또 국가에 `동일가치 노동, 동일수준 임금` 의무를 부과하고, 공무원의 노동 3권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21일에는 지방분권 및 국민주권을 공개했고, 22일 정부 형태 등 개헌안 내용도 공개한 뒤 26일 발의하기로 했다. 국회 심의기간(최대 60일)과 국민투표 공고기간(18일)을 모두 준수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이 절차에 따라 문 대통령은 22~28일 베트남·아랍에미르트 순방 기간 중 개헌안 국무회의 상정·국회 송부·공고를 위해 3차례 전자결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4월 임시국회에서 개헌을 주제로 국회 연설을 하고 여야 당대표·원내대표 초청 회동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러 정당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문 대통령의 국회 연설과 당대표 및 원내대표 초청 대화를 추진하고 한병도 정무수석 등 청와대 비서진이 각 당을 최대한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을 직접 만나 설득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개헌의 앞길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면 의결 절차에 협조하지 않고 국회 표결에 불참할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국회에서 개헌투표를 진행하면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들어가면 제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다른 야당 역시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자체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데다 “지방선거용 개헌”이라고 격분하고 있다. 개헌안 내용도 각 당마다 이견이 있다.

이 상황에서 청와대 주도로 개헌을 추진한다는 것은 국회동의를 얻어야 하는 현실에서 한계가 있다.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야당 때문에 개헌이 무산됐다는 기록을 남기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당으로 몰아 지방선거와 정국 운영에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야당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반대하는 이유는 개헌은 국회에서 제안하고 의결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개헌발의는 국론분열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는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국회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부친 셈이다. 그러나 국회 통과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굳이 개헌안 발의를 밀어붙이다 국회에서 부결될 경우 다시 개헌을 추진하기는 더욱 쉽지 않을 터다.

야당도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을 성토하거나 `관제 개헌`이라고 비판만 할 문제는 아니다. 특히 한국당의 경우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고 약속한 바도 있다. 더욱이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하더라도 국회로 넘어오면 충분히 심의가 가능하다. 또 개헌안 의결은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부결되는 것으로,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부 개헌안이 권력구조 개편·기본권 강화 등에서 부실하다면 의결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이 합당한지 따지고 점검할 시간적, 절차적 여유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 역시 서로의 주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야 할 필요가 있다. 개헌은 정치분쟁의 중심에 서기보다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청와대는 국회 부결을 변수에 넣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야 함이 마땅하다. 야당 역시 대통령 개헌안 발의에 반대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개헌 일정, 개헌 방향, 개헌 시기 등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국민의 요구와 시대에 부응하는 개헌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길 때다.

/박형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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