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식<br /><br />특집기획부장
▲ 홍성식 특집기획부장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는 재론의 여지없는 패셔니스타(fashionista)다. 회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세계 각국의 통치자들이 모인 점잖은 자리에서 빨강과 파랑, 분홍과 노랑이 어지럽게 뒤섞인 화려한 옷차림으로 주목을 받아온 인물.

바로 그 테레사 메이가 최근엔 다른 이유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영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첩자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독극물에 피격 당하자 “테러의 배후엔 러시아가 있다”며 영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한 것이다.

이처럼 즉각적이고 단호한 조치는 유연해 보이던 메이 총리의 외양과는 판이한 것이라 놀란 이들이 많다. 하지만,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냉전시대부터 이어져온 것이고, 여성총리가 보여준 강단(剛斷) 또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갈린 영국의 양당 체제. 그 아래서 테레사 메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구(舊) 러시아연방으로부터 `철의 여인`이란 증오 섞인 별명을 얻은 마거릿 대처다.

1979년 집권한 대처는 영국 최초의 보수당 여성 당수, 영국 역사상 최다 임기 총리라는 기록을 세운 입지전적 정치가. 런던에서 식료품가게를 하던 집안의 딸로 태어난 대처는 전공인 화학과는 무관한 법학을 스승도 없이 독학해 20대에 변호사가 됐고, 45세엔 교육부장관의 자리에 앉았다.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과 달리 영국 보수당은 분배를 배제한 성장에만 주력하고, 그 성장에서 얻어진 이익을 지배 권력과 몇몇 자본가가 나눠가지는 형태를 지지하는 수구 정당과는 본질에 있어 다르다. 물론 보수당은 자본주의의 유지·강화를 내세우고, 사회 주류계층을 대변하고 있으나 약자를 위한 사회보장 정책의 수립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진보 정당인 노동당처럼 “주요 산업은 국유화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적도 있다.

하지만 대처는 영국 보수당의 유화적인 기조와 달리 `냉혹한 보수주의`의 입장을 시종 견지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경제정책은 철저하게 시장중심주의를 지향했다. 생존권 차원에서 진행된 석탄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밀어붙였으며, 사회보장 혜택은 대폭 축소시켰다.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풀 몬티`에는 대처 집권시절 광산·철강노동자의 피폐해진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처가 그의 이름에서 연유한 `대처리즘`에 기반해 영국 총리로 재임한 기간은 호오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지자들은 “향후 지속된 호황의 기틀을 닦고, 고질적인 영국병을 치료했다”고 칭찬을 쏟아내지만 비난의 목소리 또한 높았다. “본질에 가닿지 못한 경제개혁으로 영국의 2차산업을 붕괴시킨 것도 모자라 빈부와 지역간 격차까지 심화시켰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반공산주의 노선을 걸었던 대처. `철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에는 우측으로만 질주하는 그에게 혀를 내두르던 러시아 공산당의 한숨과 비난이 포함돼 있었다.

어쨌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깔린 그의 영향력은 퇴임한 후로도 오랜 기간 지속됐다. 여성총리 대처의 강단이 한때 지구의 30% 이상을 지배했던 영국의 한 시대를 좌지우지한 것이다.

테레사 메이 역시 보수당의 여성총리.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주저 없는 결단을 내려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는 메이의 모습에서 “마거릿 대처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외교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생기는 호기심 하나.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누구 못지않게 즉물적이고 다혈질이라 평가받는 사람이다. `마초맨` 푸틴은 자신의 나라를 겁박하는 `제2의 강철녀` 메이에게 영국 외교관 맞추방이라는 대응 외에 어떤 반격의 카드를 꺼내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