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1752~1800)는 역대 왕들 중 뛰어난 학자이자 문인이었다. 이미 많은 각종 기록물과 학술연구를 통하여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세상에 널리 조명되었으나 대학자며 문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정조의 학문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집이 바로 `홍재전서`이다. 당시 정조는 24세에 어렵고도 큰 왕업을 할아버지(영조)로부터 이어받았으나 당시 좌의정이자 외척인 홍인한이 화완옹주의 양자로 권세를 부리던 정후겸과 연대하여 이를 방해하여 조정이 한때 크게 소란스러웠다. 이로 인해 밤이나 낮이나 삼가 두려워서 편안히 지낼 겨를이 없었다고 하였다. 또한 왕으로서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선왕의 가르침을 이어받으려는 노력이 독실하지 못하여 면목을 일신하는 아름다움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적고 있다.

당시 정조는 `풍속이 어그러져 인재가 일어나지 않고 기강이 무너졌으며, 재용이 바닥나고 따라서 역적들이 층층이 생겨나 나라의 형세가 안정되지 않고 있으니 오늘의 현실을 옛날과 비교해 보면 어떤 때와 같겠는가. 과인이야 착하지 못하여 큰일을 해내기에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대들 여러 군자는 어찌 감히 각각 그대들의 지위와 직분을 공경히 수행하여 나 한 사람을 받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맞이한 두 번째 해가 올해와 같은 무술년(1778)이다. 이 해의 지금의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국정전반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정책방향, 중요한 국정 현안을 발표하는 `신년사` 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새해 초에 중외의 모든 신하들에게 신칙하여 유시하는 하교`를 하였다. 그 내용은 `아픈 데를 보듯 하면 반드시 편안하게 해 줄 방도를 생각하게 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면 또 양육할 방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백성들이 마음 편하고 배부르게 되면 그밖에 모든 나랏일이 절로 다 이루어질 것이니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모든 신하들은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정조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연두교서라 하겠다. `서경`에도 `백성들을 내 몸 아픈 데 보듯 하라고 하였고, 또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라고 하였다` 아픈 데를 보듯 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라는 것이 어찌 한갓 그렇게만 하라는 것이겠는가. 아픈 데를 보듯 하면 반드시 편안하게 해 줄 방도를 생각하게 되고, 어린 아기를 보호하듯 하면 또 양육할 방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편안하게 해 주고 양육하는 데에는 방도가 있다. 맹자 역시 `항산(恒産)이 있으면 항심(恒心)이 있다`고 하였다. 이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지난 왕조시대나 지금의 민주주의라는 이 시대나 결국 사람 사는 이치는 한가지인 것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하는 공인들은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인격이나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각자 맡은 직책에 임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은 전직 대통령과 측근들이 하나같이 국가권력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여 부패와 비리로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고 있으며, 미투운동으로 들춰진 사회 지도층의 성범죄나 정치인들이 포함된 공기업, 금융권의 채용비리라는 독버섯 같은 갑질 횡포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정당한 기회와 희망마저 빼앗았다.

240년 전 무술년 한 어린 임금이 나라와 백성걱정으로 잠 못 이루며 안으로 삼정승과 백관, 밖으로 방백과 수령은 물론 모든 말단벼슬아치들까지도 백성의 가난과 근심을 덜어주라고 하교한 이 기록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의 이 땅의 공직자들은 잘 새겨야할 선대의 교훈이다. 국민이 쥐어준 권력으로 사욕을 채우는 공인들은 모두 발본색원하여 강력한 법이나 제도 또는 선거를 통해 퇴출시킬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