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춘 수

봄이 와 범부채꽃이 핀다

그 언저리 조금씩 그늘이 깔린다

알리지 말라

어떤 새가 귀가 없다

바람은 눈치도 멀었다 되돌아와서

한 번 다시 흔들어 준다

범부채꽃이 만든

(아무도 못 달래는)

돌아앉은 오목한 그늘 한 뼘

점점점 땅을 우빈다

봄빛이 밝고 따사로운 둑 위에 핀 범부채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마음에 선명하게 비쳐든 것은 그늘이다. 바람이 흔드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의 그늘이고 땅을 우비는 그늘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섬세하고 투명한 눈을 본다. 모든 아름다움 뒤에는 씁쓸한 그늘이 있는 법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