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희 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

흰 실과 검은 실을 더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예리한 시인의 눈과 마음이 복숭아나무의 흰꽃과 분홍꽃 뿐만 아니라 복숭아나무가 숨기고 있는 수천의 빛깔을 발견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의 마음은 눈앞에 복숭아 나무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외로운 존재들, 사람이나 물질이나, 자연물이나 모든 외로운 존재들이 다 그런 빛깔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