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2018년 봄, 드디어 `한반도 평화`라는 세기적 난제의 해법이 마련될 것인가. 아직 봄을 즐기기에는 이른 쌀쌀한 날씨임에도 도처에 춘풍이 만연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의 요인들이 오고가더니 `대화`의 문이 활짝 열리려고 하고 있다. 4월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에는 그 동안 도무지 길이 안 보이던 북미정상회담도 열릴 모양이다. 김정은이 품을 한 번 열어젖히자 여기저기에서 찬탄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북한은 온 세계가 줄곧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장구한 세월 악착같이 핵무기 제조와 미사일 개발에 몰두해왔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정권은 북한주민들이 굶어죽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핵 강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내달려왔다. 급기야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했다며 괌 기지를 까느니,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느니 협박을 일삼아 위기를 고조시켜온 끝자락이다.

진보정당 소속이라 상대적으로 남북대화 시도에 유리한 입장인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접촉의 명분으로 삼아 접근했다. 남북 최고지도자들의 친서가 오가는 국면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김정은의 돌발적 결단이 나왔다. `비핵화` 용의가 있다는 의중을 밝힌 것이 핵심 변곡점이다. 남한을 향해 쏘지 않겠다느니, 한미 연합훈련을 용인한다느니, 직통전화를 개설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들은 사실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것은 오로지 북한이 핵무기를 정직하게 완전하게 버릴 것인가 여부에 달려 있다. 그들이 원하는 반대급부의 수준과 속도가 한미와 국제사회가 용인할 수준이라면 못 받아줄 이유란 있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안보정세의 훈풍은 북한의 비핵화 성취와 한반도 영구평화 정착으로 귀결되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경사다. 잘만 되면 문 대통령의 공적이 `노벨 평화상 감`이라는 일각의 감개무량도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다. 다만, 실증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현실 속에서 부풀려지는 과도한 낙관은 걱정거리다. 한 매듭씩 차근차근, 그러나 속도감 있게 풀어나가야 될 시점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동상이몽(同床異夢)이 가장 큰 난제다. 미국은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북미대화의 `들어가는 문`으로 여긴다. 하지만, 북한은 모든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 거론할 수 있는 `나가는 문`으로 거머쥐고 있다. 이 입구와 출구의 딜레마에는 과거의 실패경험이 더께로 쌓아놓은 완고한 `불신`이 작용한다. 만약 이 상반된 관점들이 한 매듭도 풀리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기대는 삽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역사적 경험이 빚어놓은 인식의 차이점을 상호 인정하면서 신뢰를 구축할 과단성 있는 조치들을 단행하는 것이 성공을 담보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ICBM 포기만을 전제조건으로 북한과 모종의 공감대를 이루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북핵이 인정되는 수준에서 미국이 한국의 방위에 대해서 느슨해지는 것은 우리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환경변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는 핵미사일 완성을 위해서 시간을 벌기위한 북한의 꾐수에 한미가 모개로 넘어가는 경우다. 북한이 핵동결, 핵사찰 수용, 기존 핵무기 폐기의 과정을 경제지원 등 반대급부와 맞걸어놓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극비리에 핵개발에 집중한다면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생트집이라도 내세워서 `지금까지 했던 말 몽땅 무효`를 외칠 수 있는 게 우리가 익히 아는 저들의 속성인 까닭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장소로 결정된 판문점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분단의 아픔과 민족상잔의 비극을 상징하는 그곳에서 남북정상, 나아가 북미정상이 만나 핵 문제를 타결하고 통일의 첫 단추를 꿸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판문점의 `봄`, 그 향기로운 평화의 `봄`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