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눈만 뜨면 사회 전 분야 각 계층을 불문하고 듣기에도 민망한 성범죄가 전방위적으로 폭로되고 있다. 편견과 천박한 권력의 권위주의에 눌려 수면 아래로 내려가 감춰져 있던 성범죄의 추악한 진실이 `미투` 운동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대표적이다. 원래 이 운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운동으로 지난해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허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에 대한 여배우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게 된 해시태그(#MeToo·나도 당했다)를 다는 행동을 발단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됐다.

올해 1월말 검찰청 전용 웹사이트인 이프로스에 한 여검사가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고위급 검사장에게 장례식장에서 당한 성추행을 폭로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판 미투 운동을 불러왔다. 이 여검사가 당한 일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법무부장관 옆에서 여러 명의 검사가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버젓이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성범죄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도 말리지 않고 출세에 눈멀어 애써 모른 체하며 함께 자리한 당시의 동료검찰들도 모두 공범인 셈이다.

지난해 우리사회의 문단 내 일부 시인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나왔지만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유야무야됐다. 오히려 폭로에 참여한 일부 여성은 가해자인 남성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다행히도 지금 한 여검사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 사회의 가려졌던 성범죄행위가 끊이지 않고 고발되고 있다. 검찰조직 외에도 각 대학의 익명 페이스북인 `대나무숲`에는 교수들의 성추행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 전공 학생들의 피해가 다수 게시되고 있으며, 그 가해자가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이다. 그들은 유리한 위치를 이용하여 부끄러움 없이 추악한 성범죄의 갑질을 암암리에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야지도부가 일제히 미투를 지지할 때, 국회 보좌진과 직원들의 고충을 나누는 페이스북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미투야 더 세게 불어 부디 국회에도 불어와 달라`는 소망이 올라왔다. 약자인 여성 보좌진이 하소연할 곳은 이 익명게시판 정도이나 아직 무풍지대인 국회도 성폭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권력의 멋은 모른 채 맛에만 취하여 영욕을 갈구하는 부류들의 놀음은 천박한 정치세계의 정수(精髓)다. 피에 굶주린 듯한 권력의 맛보다는 그 멋을 아는 정치세력의 자기성찰이 바로 세련된 민주정치인 것이다.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군들 부끄러움은 있다. 그렇지만 이 부끄러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된다. 한 부장판사는 검찰 내 성폭력 사건에 관련하여 미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성범죄는 나부터 솔선하여 막겠다는 `미퍼스트(나부터 먼저)` 운동을 제안했다. 또한 이런 범죄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원 스트라이크 아웃의 불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엄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조선후기 임광택(1714~1799) 선생의 `쌍백당유고`에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 있다. `얼굴을 보면 다 사람 같은데/ 마음을 살펴보면 간혹 짐승도 있네/ 사람마다 사람답거나 그렇지 않으니/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기를.`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시간의 흐름으로 잊혀지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니다. 인면수심이란 말이 단지 말뿐이 아닌 세상으로 변한 것 같아 씁쓸하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슬로건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현 정부가 적폐를 뿌리 뽑고 얼마나 청렴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지에 작은 기대라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