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가 위안부합의 파기 논란을 기화로 사뭇 겉돌고 있다. 일본을 향해 쓴소리를 하고, 과거를 들춰내어 비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아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러나 아무리 고약해도 일본은 이웃나라다. 정부는 이제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양국의 새로운 미래 구축을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영영 앙앙불락(怏怏不樂)할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강하게 밝혔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언급을 자제했던 독도 문제도 “일본이 강점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위안부합의 파기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일본은 더욱 더 자극받은 모양새다. 양국관계는 해법이 모색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꼬여가는 양상이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태도는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대우받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명약관화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고 부정하고 오리발 내미는 방식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미국을 등에 업고 벌이는 행세도 얄밉기 그지없다.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국민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정치지도자들의 행태가 문제의 핵심이다.

틈만 나면 일본군 성노예 역사를 부정하고, 독도침탈의 야욕을 끈질기게 키워가는 모습은 피를 끓어오르게 한다. 역사 속에서 저들은 장구한 세월 한반도를 수탈하는 해적떼였고, 침략을 일삼은 원수였다. 분단의 균열을 뚫고 실리를 취하는 영특한 정략으로 부국을 이룬 얍삽한 이웃나라였다. 돌아보면 치가 떨리는 일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외교는 엄혹한 현실이다. 외교무대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이다. 일방적으로 이길 수는 없는 외교에서 기본적으로 손해 볼 짓을 안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그런데 우리의 외교가 과연 이런 기본을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외교적 선택이 과연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정녕 괜찮은 것인가.

경쟁논리로 비교했을 때, 일본은 대단히 이성적으로 한국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전략을 짜고 시행한다. 그야말로 주도면밀하다. 일본에는 웬만한 우리 학자들보다도 식견이 깊고 넓은 수만 명의 한국전문가들이 있다. 우리는 매사 감정적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시시때때 정치적 이득을 위해 반일(反日)정서를 자극하고 동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 정치사에는 정치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대일감정을 악용한 사례가 즐비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대한민국이 다른 대륙으로 이사를 가거나 일본을 떼어 보내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따로 또 같이 가야 할 존재다. 효율적인 대일외교의 설계도를 장만해야 할 때다. 이렇게 어리석게 굴다가는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일본 뒤꽁무니를 따라다녀야 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