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주 한동대 교수
▲ 김학주 한동대 교수

최근 미국은 철강을 덤핑수출할 수 있는 신흥국가에 한국을 포함시켰고, 여기에 53%에 이르는 관세가 부과될 수도 있다. 트럼프의 취임 이후 이미 이런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고, 업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무자비한 관세가 발효되기 이전에 미국 기업들은 아시아로부터 값싼 철강 재고를 축적해왔다. 즉 그 동안 시장에서 한국의 철강 수출 실적에 대해 과대 평가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철강업체들은 중국의 설비 구조조정 덕분에 한 숨 돌렸고, 이제부터는 전 세계적인 인프라 구축 붐(boom) 속에 한번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1.5조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인프라 구축으로 인한 수혜는 `우리 떡`이 아닐 수 있다는 실망감이 생겼다.

이런 미국의 이기주의를 보며 중국은 가만히 있을까? 사람이 자신을 아는 일은 중요한데 트럼프는 미국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 최근 중국정부는 애플에게 중국에서 팔리는 아이폰의 부품 가운데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산 제품을 쓸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미국은 해킹의 우려 때문에 중국의 반도체 시장 접근을 차단해 왔고, 그 혜택을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누렸는데 중국 정부는 이번 조치를 빌미로 반도체 시장 진입을 선언했다. 불똥이 한국으로 튄 셈이다. 애플도 세계 최대의 시장인 중국을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반도체 시장 경쟁이 치열했을 때 삼성전자는 가격을 낮추며 경쟁자들을 압박했다. 그 결과 일본의 엘피다도 부실해졌다. 그 때마다 일본 정부는 은행들을 불러 놓고 “우리의 기간 산업인 반도체가 힘들어졌으니 도와주시오”라고 이야기하면 은행들은 아무 불평 없이 엘피다를 지원하곤 했다. 삼성전자가 엘피다와 싸운 것인가? 아니면 일본 정부와 싸운 것인가? 이런 비상식적인 간섭으로 따지면 중국정부가 한 수 위일 것이다.

여기에 GM은 군산공장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나머지 3개의 공장도 시간을 두고 문 닫을 가능성도 있다. 2002년 김대중 정권은 대우차 부도의 근본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GM에 넘겼다. 두가지 기대가 있었다. 첫째, GM은 세계적인 기업이므로 자동차 관련 국내 고용을 안정시켜 줄 것과 둘째, 현대차의 독과점을 견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GM의 관심은 세계 최대 시장으로 성장할 중국이었다. 당시 중국은 자동차 생산 인프라가 너무 열악했다. 반면 한국에는 중국인들의 구매력에 맞는 가성비 높은 차를 만들 수 있는 생산 인프라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중국 자동차 생산 인프라가 예상보다 너무 빨리 형성되어 한국 생산기지가 그 가치를 일찍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중국이 우리를 빨리 따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아무리 대규모 투자를 해도 정당화될 수 있는 큰 시장이라는 점과 둘째, 중국 정부가 해외업체로부터 자동차 기술 상납을 끊임없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규모의 경제가 매우 중요한 장치산업이라서 안정적 수요를 제공하는 내수시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한국 승용차 연간 수요가 120만대 정도라면 현대차 1군데 정도가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는 크기다. 즉 2002년 김대중 정권은 대우차도 현대차에 넘겨 구조조정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하는 일이 독과점만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내 과도한 투자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정부 관료는 산업 내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늘 미봉책으로 일관해서 부실을 키워 왔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망가진 대우차를 현대차에 떠넘길까, 아니면 공기업화할까? 장치산업은 고성장기에는 짜릿하지만 저성장기에는 그 만큼 고통스럽다. 자동차뿐 아니라 한국의 전체 산업구조가 점차 작동하지 않을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이는 모두 정부부채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원화는 장기적으로 절하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투자자들에게 해외투자에 대한 관심을 거듭 촉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