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강업계가 미국의 초강력 통상압박으로 최대의 위기에 놓였다. 자구책을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철강업계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례적으로 `정부의 책임`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현장의 절박성을 여실히 대변한다. 미국의 통상압박이 점점 더 난국으로 빠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미흡한 대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해결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열린 한국철강협회 정기총회에서 철강업계 CEO들은 정부를 향해 일제히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보복이라는 강펀치를 휘두르자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안보는 안보, 통상은 통상`이라는 원론적인 투트랙(two-track) 전략을 밝혔을 뿐 구체적인 대처방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철강업계 CEO들은 지난 설 연휴기간 발표된 미국 정부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53%의 고관세 규제안에 대해 정부가 바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등 대처가 미흡했다고 비판의 초점을 맞췄다. 포항의 넥스틸은 미국 수출 의존도가 70~80%에 달하고, 휴스틸은 전체 매출 가운데 미국 수출 비중이 40%를 넘는다.

이번 고관세 조치가 적용될 경우 세아제강은 대미 수출액 약 5천700억원(2016년말 기준)의 25%에 이르는 연간 6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넥스틸은 전체 매출액(2천851억원)의 80%에 육박하는 2천3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정부가 특단의 협상카드를 내놓지 않는 한 이들 업체는 존폐기로에 서게 됐다는 얘기다.

철강협회 총회에서는 그동안 퇴직공무원 몫으로 할애했던 철강협회 상근부회장 자리를 놓고도 신경전이 벌어졌다. 1993년 이후 지난 25년 동안 철강협회 상근부회장은 철강업과 무관한 정부 공직자 출신이 맡아왔다. 이날 상근부회장 선임 문제를 놓고 3시간 가까운 격론에도 끝내 적임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공석상태로 남겨 놓았다.

정부는 미국 정부의 철강 수입관세 권고안이 확정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일단은 우리기업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미국 측과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의지가 워낙 강해 얼마나 통할지는 의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미국 측의 고강도 보호무역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미국정부의 무역정책은 당연히 정치적 헤게모니에 의해 좌우된다. 그렇다고 저들이 하자는 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굶어죽기 십상인 상황이다. 국가경제와 민생에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철강산업의 운명을 무책임하게 업계에만 맡겨놓은 채 역할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이제 확실한 의지와 능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