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Othello)`는 섣부른 의심으로 아내를 살해하는 한 장군의 이야기다. 부관 자리를 카시오에게 빼앗긴 이아고는 앙심을 품고 아내 에밀리아로 하여금 흑인 용병대장 오셀로가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에게 준 귀한 손수건을 훔쳐오게 한다. 이아고는 그 손수건을 카시오의 방에 떨어뜨려 거짓 밀애증거를 만들어놓고 오셀로를 자극한다. 오셀로는 자기가 준 손수건이 카시오의 방에서 발견된 이유를 끝내 대지 못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그만 목 졸라 죽이고 만다. 에밀리아의 뒤늦은 고백으로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오셀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이아고도 잔혹한 처형을 받게 된다. 손수건을 도둑맞은 피해자 데스데모나에게 입증책임을 지운 것이 오셀로의 치명적인 오류였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訪南)은 대한민국의 민심을 명중한 고약한 어뢰(魚雷) 꼴이다. 김영철의 방남은 지난 2010년 3월 26일 북한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돼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된 천암함 사건을 다시 불러내어 나라를 흔들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김영철의 방문을 놓고 극한대결에 빠졌다.

미국과 한국의 제재대상인 김영철의 방남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한국당의 공세수위나 발언은 초강경 일변도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영철의 방문허가는 천안함 폭침에 동조하는 이적행위”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천막 의총을 열고 김영철 방남 저지를 위한 장외 투쟁을 시작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위기의 수위를 낮추고 북미대화를 유도함으로써 나아가 `북핵 폐기` 성과를 이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정부여당으로서는 답답한 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큰 눈으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야당의 `초강경`을 야속해할 일만은 아니다. 얼마든지 대북협상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의 태도는 문제다. 청와대와 통일부와 국정원이 짜 맞춘 듯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 책임자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그 동안 김영철을 도발총책으로 지목해왔던 국방부는 아예 `노코멘트`다. 천안함 전사자 유족들이 아직도 울고 있는데, 참 너무한다 싶다. 결국 천안함 폭침의 `북한 소행` 결론을 의심해온 진보진영의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

아쉽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부와 동맹국과 국제사회가 함께 내린 결론을 이렇게 뒤집는 일은 또 다른 나라망신이다. 정부여당은 처음부터 “김영철은 도발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지만, 북한이 대화 파트너로 내세운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양해해 달라”고 말했어야 맞다. `증거가 없다`는 말은 김영철을 제재대상에 넣은 한국과 미국이 잘못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광우병 파동`에서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범람과 맞물린 `탈 진실(Post truth)`의 덫에 걸린 현대사회의 병폐를 참혹하게 경험했다. 참이냐 거짓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마구 휘둘리는 중우정치(衆愚政治)에 깊숙이 빠졌다. 매사 진실인지 아닌지보다 내 편인가 아닌가부터 먼저 따지고 시작한다.

천안함 폭침 논란도 그렇다. 집요하게 `북한소행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은 `진실 추구`의 탈을 쓴 `신념의 노예`들이다.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과학의 탈을 쓴 고단수의 거짓말 기술자들인지는 이미 `광우병 파동`에서 생생하게 겪었다. 진작부터 교졸한 거짓말쟁이 이아고의 편을 들기로 작정한 그들은 무고한 데스데모나에게 카시오의 방에서 손수건이 발견된 이유를 대라고 끊임없이 추궁하고 있다. `김영철`이라는 이름의 어뢰 한 방에 무한 소요에 빠져 허우적대는 오늘의 허약한 대한민국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