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의 섭
다만 남쪽 하늘로부터 따스한 온기가 간신히 느껴진다
내 곤두선 살갖만 일억 오천만 킬로미터 밖에 떠 있는 항성을
기억할 뿐이다
오래도록 눈 속으로 사라진 지상은 떠오르지 않아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눈길 나고 눈언덕 돋는
움직이는 마을 따라 떠돌다 보면
내게도 녹아 버릴 리 없는 빙하기가 도래할까
설원에 낯선 문자가 씌어 있어
가까이 가 보니 허리 부러진 무지개였다
좀 전까지도 누군가와 생소한 얘기를 나누던 것 같았지만 단지
눈 쌓여 희뿌연 허벅지 살을 드러낸 안개나무 한 그루
앙가슴에 녹아내리던 물방울 다시 얼어붙는 중이다
가지런한 발자국이 나무 밑에서 끊어졌다
눈 그치고 여전히 인적은 없다
세계를 흔적으로 이해하려는 듯한 인식의 방식을 본다. 세계에 대한 인식은 이미 암호화되었거나 그 암호화된 것들이 지워져 가는 그 흔적을 추적하고 찾는데 시인의 특별한 인식의 틀을 발견할 수 있다. 눈이 온 천지를 덮어 설국을 이룬 세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거기서 존재의 태를 발견하려는 시인의 밝은 눈을 본다.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