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br />수필가
▲ 김순희 수필가

스무 살 시절은 르네상스다. 그래서였나, 그 시절 두꺼비약국 지하에 있던 르네상스 커피숍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커피를 주문하면 머그컵이 아닌 받침까지 얌전하게 딸린 잔에 담겨 나왔다. 탁자 중앙에 설탕과 프림이 미리 놓여있어 티스푼으로 내 간은 내가 맞췄다.

커피를 처음 만난 날은 초등학교 2학년 설쯤이었다. 외지로 돈 벌러 나갔던 고모가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귀향했다. 보따리 중에 유리병 세 개가 든 선물 상자가 제일 눈에 띄었다. 그게 무엇일까 궁금해죽겠는데 보여주지도 않고 만지지도 못하게 한 엄마는, 마루에 놓인 장식장에 보기 좋게 진열해 버리는 것이었다.

호기심 많던 언니와 나는 그 밤을 그대로 넘길 수 없었다. 식구들의 숨소리가 잦아들 무렵 살금살금 마루로 나왔다. 뻘쭘하게 서서 잠든 장식장이 놀라지 않도록 유리문에 손바닥을 밀착해서 열고 천천히 병을 하나씩 꺼내는데 성공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하나는 과일향 가득한 주스가루였다. 시커먼 가루가 든 갈색 병에서는 나무 향 같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냄새가 났지만 하얀색 가루가 든 병은 정체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미숫가루처럼 물에 타 먹는 건가보다. 언니가 대접에 냉수를 한가득 떠오고 나는 밥숟가락으로 세 병에 든 내용물을 모두 한 숟가락씩 물에 탔다. 맛을 봤다. 밍밍했다. 가루 양이 적나싶어 한 숟가락씩 더 넣고 젓고 맛보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병의 3분의 1이 푹 내려가도록 넣고 저어도 달콤해지기는커녕 쓴맛만 더해갔다. 세상에, 고모는 왜 이렇게 맛도 없는 것을 사왔을까.

다음날 언니와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끝도 없이 들었다. 엄마는 쓴 커피에 하얀 프리마를 넣고 함께 딸려온 오렌지주스 가루가 아닌 원래부터 집에 있던 설탕을 넣었다. 그러고선 숙모가 시집올 때 장만해온 하얀 사기로 된 잔에 담아 어른들부터 한 잔씩 대접했다. 어린애들은 먹는 게 아니라며 주지도 않았지만 밤새 쓴맛을 본 우린 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장롱 위에 과자세트에 만족했다.

오래 커피와 알고지낸 사이지만 입보다는 코와 귀로 만나길 즐긴다. 아들은 별다방 커피가 입에 맞다 하고 남편은 집 앞에 있는 포항이 본점인 곳이 자기 취향이란다. 나는 맛보다는 향기가 더 좋다. 볶은 콩을 사와서 그라인더에 쏟아 부을 때 내는 소리가 더 좋다. 갈색 알갱이들이 금속 재질과 만나 다라랑 거리며 소복이 담기는 순간이 좋고, 뽀지락 거리며 갈리는 소리, 소리와 협연하듯 울려 퍼지는 향은 늘 맛보다 그윽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신 것은 얼마 전이다. 대게를 싸게 먹을 수 있다기에 친구들과 구룡포 항구 끝자락에 자리한 조립식 건물로 갔다. 배가 있어서 직접 잡아 온다는 그 집은 정말 대게만 쪄서 나왔다. 네 사람에 열한 마리이니 넉넉했지만 까서 먹는 재미에 손이 바빴다. 한참을 정신없이 게딱지에 밥까지 비벼먹고 나니 느끼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번듯한 가게가 아니라 후식으로 기대할게 없었다. 모두 커피가 땡기는 눈빛이었다.

그때 우리 방문을 열고 “커피 시키신 분?” 이러는 거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기에 그 커피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었다. 차보자기를 든 아가씨가 가버리고 나니 더욱 커피가 간절했다. 나는 옆방으로 가서 그 다방 전화번호를 물었다. 아가씨가 조금만 기다리라 하더니, 금세 우리에게로 건너왔다. 가져온 양이 넉넉해서 세 잔 정도는 된다며 식성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우린 그냥 알아서 해 달라 하니 보온병의 커피를 종이컵에 따르고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을 넣어 휘리릭 저어 준다. 대게와 너무 잘 어울리는 달콤한 다방커피였다.

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이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칙이라도 되는 듯 학창시절 제일 번화가에 `투투쓰리`란 다방 이름이 있을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시커먼 아메리카노가 최고인양 떠들지만 우리에게 커피는 역시 투투쓰리가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