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큰 별들이 타오를 듯이 마을을 내려쬔다. 마을의 불빛보다 밤하늘의 별빛이 더 크다. 태양 같은 별이 태양처럼 빛난다.
▲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큰 별들이 타오를 듯이 마을을 내려쬔다. 마을의 불빛보다 밤하늘의 별빛이 더 크다. 태양 같은 별이 태양처럼 빛난다.

△고향:깊고 그윽한

설날이라 고향집에 왔다. 그러고 보니 집에 온 지가 2년이 지났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쓸데 없이 바쁜 척을 하고 살았다. 형 식구들과 함께 저녁께 도착했다. 아들이 온다고 부모님은 소고기를 사놓아 저녁엔 술도 한 잔 마셨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빈둥거리다 뒷산을 올랐다.

뒷산이 백두대간의 한 자락이다. 집엔 눈의 흔적도 없었는데 능선에는 발이 푹푹 빠진다. 다섯 시간쯤 걸었나보다. 어렸을 때 같이 자란 한 살 터울의 동네 형과 열두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산에 다녀왔더니 벌써 세 시다. 마침 배터리가 없어 전화도 못했다. 집에 도착해서 부리나케 전화를 했다.

지홍 형은 기다리다가 화가 났나보다. 차마 동생 앞에서 화난 내색은 못하고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멀리에서부터 에둘러 끌어오고 있다. 참 좋아하는 형인데 섭섭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왔는데 전화가 왔다. 지금 오란다.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양주도, 고량주도 털어넣고 왕창 취했다.

그렇게 취해 밖에 나왔더니 뒤따라 나온 지홍 형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강일아 별이 저래 많타, 한다. 나도 따라 올려다보며, 참 좋네요. 아까 낮부터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한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좋다. 형이 담배를 피우는 사이 나는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과 어둠과 별과 우주를 생각한다.

△거대한 느림:우리 은하의 자전

저기 별이 띠처럼 흩어진 것이 은하수다. 저 은하의 이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라고 해서 `우리 은하`라고 부른다. 우리 은하 중에서 우리는 태양계에 속해 있다. 태양계는 8개의 행성, 그리고 언제부턴가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명왕성과 같은 왜행성이 5개 정도 있다. 또 지구에는 1개, 화성엔 2개 밖에 없지만, 목성이나 토성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도 60개가 넘는 위성이 있다. 그 외에도 숱한 혜성과 유성체 등으로 우리 은하는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보면 태양계는 엄청 거대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1977년에 쏘아 올린 보이저 1호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한 시간에 6만7천km의 속력으로 날아 36년이 지난 2013년에 겨우 태양계를 돌파했으니, 태양계만 해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우주는 그렇게 호락호락 한 수준이 아니다. 우주 전체에는 대략 1천억 개 정도의 은하수가 있고, 또 그러한 은하에는 저마다 1천억 개 정도의 별이 있다.

지구는 태양이 전부 인양 태양을 공전하지만, 태양은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태양이 공전한다는 것은 우리 은하 전체가 자전한다는 말과도 같다. 우리 은하는 나선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 길이는 10만 광년이라고 한다. 우리 은하는 그 긴팔을 펼치고 아주 천천히 한 바퀴를 돈다.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겨우 한 바퀴를 도는데 2억5천만 년이 걸린다는 것일까. 만약 인간이 한 바퀴를 도는 수준의 속도로 우리 은하가 공전한다면, 우리는 5초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데, 그런 작은 몸을 지닌 우리로서는, 우리 은하의 규모를 도무지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면 그 자리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지구가 지나간 그 자리로 돌아오려면 2억5천만 년이 걸린다. 물론 그 사이 우주는 또 변화돼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이 지나가면, 이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간 좋은 사람과 술을 마실 수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뉴턴의 고집: 우주는 정적이며 유한하다

우리는 우리 은하에 속해 있어 우리가 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작은 지구가 돈다는 것도 못 느끼는데, 저렇게 큰 천체의 회전에 무감각한 것은 당연하다. 우주는 매우 정적인 것처럼 느껴지며, 이 고요한 우주에는 골고루 별이 흩어져 있다. 그래서 우주는 정적이며, 또 동시에 균질하다, 고 뉴턴은 생각했다.

균질적이며 정적인 우주라는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뉴턴 자신이 발견해낸 중력에 의해 무장해제되고 만다. 왜냐하면 중력은 서로를 끌어당기기 때문인데 지구의 경우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당기는 힘이 더 크다면 지구는 한쪽으로 끌려가 버릴 것이고, 지구가 끌려간 쪽은 중력이 더 커지고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행성 역시 끌려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는 한데 뭉쳐지면서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뉴턴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rincipia)`(1697)가 발간되기 전인 1692년 리처드 벤틀리라는 성직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뉴턴은 이러한 모순을 피하고도 싶었고, 그러면서도 우주가 정적이며, 균질하다는 생각을 계속 주장하고도 싶었다. 그래서 그는 `우주는 무한하다`는 가정을 덧대어야 했다. 이렇게 되면 우주공간에 떠 있는 지구라는 별이 무한히 많은 별들에 의해 전후좌우상하로 당겨지지만 그 힘은 상쇄되어 힘의 평형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별 하나가 조금만 요동쳐도 주변의 균형이 연쇄적으로 붕괴되어 우주는 하나의 중심으로 모아지고 말 것이다.

△밤의 반짝임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뉴턴과 같은 대가도 자신의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고집을 부렸다. 그는 우주는 정적이며 균질적이라는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우주는 무한하다는 무리한 생각을 덧붙여야 했고, 무모하게도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신의 전능한 힘”까지 끌어들였다. 이런 뉴턴의 고집 덕분에 사람들은 우주는 정적이며, 균질적이고, 무한하다는 생각에 갇혀 수백 년을 흘러보냈다. 아인슈타인과 허블이 나타날 때까지 말이다.

아인슈타인과 허블은, 우주는 유한하며, 역동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우리 눈에는 고요하고 정적으로 보이는 우주는 사실 울퉁불퉁하게 공간이 왜곡되어 있으며, 그런 비포장도로 같은 길을 운행하는 도중에 행성은 행로를 벗어나 접촉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접촉사고는 행성 하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끝없이 증폭하여 하나의 `계` 하나의 `은하`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 엄청난 사고를 겪지만 우주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우주는 유한하지만 인간이 가진 무한하다는 개념보다 훨씬 큰 유한함을 가지고 있어 감히 그 규모에 범접할 수 없다.

오랜만에 온 고향의 밤은 반짝였다. 지홍 형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은 서로 교차하며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공명이 만든 파동은 얼마 나아가지 못하고 산산히 흩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 웃음이 저 우주까지 퍼져 나가길 바랐다. 그리하여 우리의 웃음이 우리 은하와 더불어 2억5천 년까지 함께 자전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