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br /><br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다들 그러고 살아왔어.”

여성들에게 설 명절은 이제까지 `다들 그렇게 살아왔던` 가부장제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민족 최대 명절은 그동안 못 보았던 가족과 친척들이 만나는 반가운 날이면서, `명절증후군`과 명절 후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전통과 관습이 만나는 부담스런 자리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차례 준비로 육체적 부담과 정신적 고충, 심지어는 감정노동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며느리`에게 명절은 증폭된 가사노동만이 아니라 공손하고 다소곳하게 시댁 식구들을 대해야 하는 의무도 수반되는 날이다. 그러기에 설 명절을 `잘` 보내는 것은, 주고받는 덕담마냥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명절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이러저러한 씀씀이로 경제적 부담이 큰 것이 첫 번째 이유로 꼽히고 있다. 그 다음으로 남성들은 가족, 친척들의 잔소리를 듣는 것이, 여성들의 경우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의 다른 응답은 명절 가사노동이 대체로 여성들에게 부과되어 왔고 숙명처럼 감당해 왔던 고유한 의무임을 보여준다. 명절에 해외로 여행을 가거나 차례 상을 돈을 주고 맞추는 경우도 늘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시댁으로 내려가 각종 명절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감당한다. 차례상에 안주상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상을 차리고 또 치우는 일이 진행된다. 빨갛게 표시된 연휴기간에도 쉴 틈 없는 노동으로 주부 10명 중 6명이 관절에 무리를 느끼는 때도 명절이다.

“명절 때 시댁에 안 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선호빈 감독의 가족 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가 장안의 화제다. 감독의 실제 아내는 며느리이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명절 가사노동을 거부한다. 가족을 위해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감내해 왔던 시어머니와 시어른에게도 자신이 할 말을 다하는 신세대 며느리와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또한 결혼 23년차 주부가 쓴 `며느리 사표`도 저자인 영주가 명절을 앞두고 시부모에게 `며느리 사표`라고 쓴 봉투를 내밀며 독립적인 삶을 선언하는 책이다. 여성들이 결혼 후 당면하는 며느리와 아내, 엄마, 주부라는 이름하에 겪는 구조적 불평등을 역설한다.

시댁에서 “며느리는 제일 밑바닥”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 비해 요즘 며느리들은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가부장제 문화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며느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드물다. 시어른이 말씀하시면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좋은` 며느리의 미덕이다. 따스한 가정을 찬양하는 신화 속에서 여성은 자신보다 다른 식구들을 먼저 배려한다.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성 평등은 명절이 되면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남성들이 먹고 마시고 TV를 보고 낮잠을 자도, 여성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당연히 한다. 관습으로 굳어진 남녀 간의 성역할과 가부장적 전통이 답습하고 있는 명절의 뒷풍경이다.

이렇듯 무의식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명절의 불편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여성에게 가중되는 명절 가사노동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남성들도 공동으로 분담해야 한다. 평소에도 한국 남성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45분이고 여성은 5배가 넘는 227분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된 가사노동으로 먼저 기억되는 명절이 아니라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따스한 정을 느끼고 돌아오는 명절의 본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역할과 의무만 남은 명절이 아니라 일상이 바빠서 못 만났던 가족과 친척과 반갑게 대화 나누며 새해를 설계하는 날이어야 한다.

다음 세대의 행복한 명절문화를 위해 여성들이 고생하는 명절 문화에 혁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