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민족이 가지는 공통된 제의(祭儀)다.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농경 사회일수록 비에 대한 간절함은 더욱 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풍백, 우사, 운사만 봐도 비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면 마을단위 혹은 나라 차원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왕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부족해 농사가 흉년 들고 민심이 흉흉해지면 이것은 왕의 부덕(不德)의 소치라 생각하고 속죄 의례를 행하기도 했다. 또 죄수를 사면하거나 조세감면 등의 선정을 베풀곤 했다.

기우제는 기우제의 방식이나 주체들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 왔으나 지금은 기우제의 의미가 거의 퇴색하고 지역에 따라 상징적 의미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 대구 수성구청이 대구 경북일대의 심각한 가뭄에 대한 간절함을 모아 기우제를 올린 것이 이런 케이스다. 작년 7월 경북지역이 한창 가물었을 때도 포항과 경주 등지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기우제가 올려졌다.

기우제가 비를 내리게 하는 영험이 있지 않다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 이미 입증된 마당이다. 민간에서 이뤄지는 이런 기우제는 간절함에 대한 마음을 기우제 형식을 빌어 표현한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 지역의 호퍼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그 사연을 알아보니 이 인디언족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호퍼 인디언 정신`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인간이 불굴의 신념으로 일을 하면 무슨 일이든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인디언 기우제`라는 책까지 나왔다. 불굴의 정신으로 인생을 살아 성공한 사례들을 엮었다.

궁즉통(窮則通)이라는 말처럼 궁하면 살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인간의 심리가 기우제 속에는 숨어 있는 듯하다.

현대판 기우제이지만 비가 내리길 바라는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과학이 아직은 비를 내리게 하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현실이 오히려 우리 고유의 기우제를 유지하게 해 다행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우정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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