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맹추위가 마음까지 얼어붙게 하던 날, 친구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선배를 만났다.

삼십여 년 세월동안을 함께 교직에 근무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퇴직을 하였으니 자연스레 퇴직 후 인생2막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고, 서로 공감하며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릴 즈음 그 선배가 문득 기회가 되면 애향심을 고취할 수 있는 글을 한 번 써보라고 권했다. 필자나 그 선배나 여기서 나고 자라 이 땅에 묻힐 마음으로 60년이 넘도록 머물고 있으니 고향사랑이 지극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향사랑에 대한 감성적 접근은 설날을 앞두고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음악이거나 타향살이의 그리움쯤으로 생각했지 직접 글로 써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선배의 권유를 듣는 순간 뜬금없이 `바퀴벌레와 호남향우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퀴벌레는 몹시 혐오스런 동물이라 기분 나쁜 비유에 많이 사용되지만 그 질긴 생명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먹이와 물도 없이 한 달 동안을 죽지 않고 견디기도 하며, 공기가 없는 곳에서도 45분 동안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끈질김을 소재로 한 유머에 바퀴벌레가 단골로 등장한다.

오래된 기억들이라 정확하지는 않으나 `세상이 멸망해도 살아남는 것들` 시리즈에 `바퀴벌레와 아줌마`나 `바퀴벌레와 호남향우회` 등을 유머라며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칫 특정계층이나 지역에 대한 무례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그런 의도가 전혀 없음은 물론이며, 특히 이 글에서는 긍정과 부러움의 의미로 차용하였으니 오해 살 일은 없을 것이다. 향우회의 대명사가 된 호남향우회의 지역사랑은 단순한 감성의 영역이 아니라 소신과 신념을 기반으로 한 철학의 범주로 인정되니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지 않는가! 필자가 대학시절에 함께했던 `갯벌향우회`가 떠오른다. 포항출신 대학생들의 모임이었는데, 객지생활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달래는 심리적 기능은 물론이고 정보교류나 품앗이 등으로 매우 유용하였다. 그 바탕이 고향에 대한 믿음이요 고향사람에 대한 신뢰다. 명절이나 방학이 되어 귀향 시, 버스 차창으로 형산강을 만나고 형제산 사이로 멀리 포스코의 불빛이 보이면 어찌 그리도 반갑고 마음이 놓이던지….

지금 언론에선 평창 동계올림픽 소식이 한창이다.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귀한 올림픽이다. 88올림픽은 우리나라가 종합 4위를 차지하여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우리 문화도 함께 알리는 계기가 되어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선사하였고, 애국심으로 만들어낸 쾌거였다.

애국심과 애향심은 동심원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소식을 보다가 늦게 잠들어 단잠에 빠진 새벽, 규모 4.6의 지진에 놀라 잠을 깼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새삼 성찰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였으며, 내 고장 포항에 대하여 다시 걱정하게 되었다. 지역의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황급히 현장을 찾았고, 놀란 이재민들은 그들에게 격렬한 항의와 질책을 퍼부었다. 시민들이 공직자들의 노고를 왜 모르겠는가? 땅속의 일을 그들인들 어찌 알며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안전한 포항, 살기 좋은 포항을 만들자는 마음은 하나일 것이다.

지난 추석에는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이번 설날에는 꿈틀로 작가들의 전시회가 고향을 찾는 `포항사람들`을 기다린다. 포항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