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섭<br /><br />변호사
▲ 박준섭 변호사

얼마전 대구지방변호사회에 소속된 변호사들과 하얼빈을 방문하여 안중근 기념관과 731부대 기념관을 들렀다. 하얼빈이라는 역사적 공간은 나에게 안중근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곳이었다.

도대체 왜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주장하면서도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여야 하였을까라는 생각을 그곳에서 하게 되었다.

안중근은 자신의 미완성 저서인 `동양평화론`에서 서양이 제국주의 팽창노선으로 동아시아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군국주의 일본이 서양의 팽창주의정책을 본받아 대륙과 한국에 대하여 식민지 지배를 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그 당시 일본이 주장하던 제국주의적인 아시아연대론이나 동양평화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1885년에 일본이 서양열강을 본받아 아시아의 이웃나라들에 대하여 팽창주의정책을 취하여야 한다는 소위 탈아론(脫亞論)을 발표한 이후에 일본은 전면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벌이는 과정에서 동양평화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서양의 침략에 대하여 동양을 지키고자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다는 동양평화론을 유포한 일본은 병합을 앞둔 통감부 시기에는 동양평화를 위해서 분란의 소지가 있는 한국을 보호국화 또는 합병해야만 화근을 없앨 수 있다는 동양화근론으로 논리를 발전시켰다.

안중근은 일본인들에게는 지금도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테러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의 병탄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고 안중근 의사도 이 점에 대하여 단호하게 부정하였다. 안중근의 의거는 곧 식민지가 될 약소국의 군인으로서 제국주의 팽창에 대한 강력한 무력적 저항, 곧 동양평화의 의전(義戰)으로 보아야 한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 수감 직후 기술한 `안응칠 소회`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천하대세를 깊이 헤아려 알지 못하고 함부로 잔혹한 정책을 써서 동양 전체가 멸망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그 죄악을 성토한 것이라고 그 뜻을 뚜렷이 밝히고 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서론과 1장인 전감만 작성된 상태에서 사형당함으로써 미완으로 끝났다. 그러나 미완성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중요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동양평화론이 이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그 나머지 장들을 그 여백에 이어 써 가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제 100년 전의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상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21세기에 동아시아담론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미국에 대응하여 중국이 계속 성장하는 상황에서 2030년 무렵에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다시금 깨어질 수 있으므로 그 때에는 중국, 일본,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포함하는 동북아의 새로운 정치, 경제, 안보, 문화 등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게 될 계기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중·일 동양 삼국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공동체를 결성하자는 안중근의 구상은 근대가 끝이 나고 문명사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에 평화라는 새로운 미래의 전망를 열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문제의 해결은 한국이 간절히 바라는 동북아 평화구상에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나아가 이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통일을 준비하면서 더 이상 민족주의적 시각에만 얽매이지 말고 인류적 관점, 문화사적 관점에서 더 큰 통일의 의미를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토지를 매개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던 근대의 제국주의 시대를 지나 문화와 문명으로 세계를 리드하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때, 가해자였던 역사가 없고, 동서양을 동시에 잘 아는 대한민국이 동북아평화공동체 담론을 주도하는 것을 넘어서 세계의 평화와 운명을 주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안중근 의사가 미완의 동양평화론에 미래세대가 채워주기를 바라는 내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