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인

삼율 지나다가 정거장 건너편, 텃밭이었던 자리. 이젠

누구네 마당가에

저렇게 활짝 핀 봉숭아 몇 포기, 그 옆엔

빨간 토마토가 고추밭 사이로 주렁주렁 익고 있다

왜 내겐 어머니보다 할머니 기억이 많은지

멍석을 말아내고 참깨를 털면서

흙탕물이 넘쳐나는 못도랑 업고 건네면서

둑방가에 힘겨워 쉬시면서, 어느새

달무리에 들고 그 둘레인 듯 어슴푸레하게, 할머니

아직도 거기 앉아 계세요?

나는 장수하며 사는 한 집의 내력이

꼭 슬픔 탓이라고만 말하지 않겠다

다만 우리가 추억이나 향수라는 이름 말고 저 색색의

눈높이로 고향 근처를 지나갈 때

모든 가계는 그 전설 따위에 도달한다

그리고 뒷자리는

늘 비어서 쓸쓸하다

경북 울진군 후포가 고향인 시인이 어릴적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정겨운 필치로 보여주고 있는 시다. 어머니보다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어슴프레한 편이다. 그래서 시인은 전설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핏줄로 이어온 육친의 사랑을 느끼며 그 할머니의 부재에 대한 쓸쓸함이 묻어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