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청와대의 국민청원 사이트는 1개월 동안 20만명 이상 추천을 받을 경우 행정부 장관 또는 청와대 수석 등 정부 관계자가 답변을 하도록 돼 있다. 국민소통공간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청소년 보호법 폐지`, `낙태죄 폐지`, `주취감경 폐지`, `조두순 출소반대`, `권역외상센터 지원 강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 폐지` 청원 등 6개 청원에 답이 이뤄졌고, `가상화폐 규제 반대`, `나경원 의원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 파면`, `미성년자 성폭행 형량 강화`,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 교통사고처벌 강화`,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등의 청원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1호 청원이었던 청소년보호법 개정 또는 폐지 청원은 `부산 사하구 여중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생겨난 청원이었다. 청소년보호법의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청소년들이 자신이 미성년자인걸 악용,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성인보다 더 잔인무도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데 많은 국민들이 공감한 것이다. 2호 청원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요청하는 청원이었다. 임신이 여자 혼자서 되는 일이 아니므로 여성에게만 독박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고, 불법 낙태수술로 인한 의료사고를 막기 위해 자연 유산 유도약(미프진) 도입을 요청하고 있다. 3호 청원인 주취감형 폐지와 4호 조두순 출소반대 청원은 잔혹한 성폭행사건인 `조두순 사건`에 대한 공분에 기인한 청원이었다. 조두순에 대한 주취감형이 부당하다는 주장에서 시작된 `주취감형` 폐지 청원은 일반적으로 술을 먹고 범행을 저지를 경우 심신미약(이성이 없고 우발적)이라는 이유로 감형을 받을 수 있는 법률조항에 따른 것이어서 폐지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답변과 함께 대법원 양형기준을 바꿔 향후 술에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감형되지는 않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두순 재심청원 역시 현행 법상 재심당사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재심청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실현 불가능한 청원이란 청와대의 답변이 있었고, 법 개정 여부와는 관계없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신변위협이나 조두순의 재범방지를 위한 규제 및 단속은 철저히 해나가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5호 청원은 소말리아 피랍 사건, 그리고 북한군 판문점 귀순사건에서 활약한 이국종 교수가 우리 의료현장 현실을 고발하면서 떠오른 청원중증외상분야의 지원 방안마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6호 청원인 전기·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 폐지 청원은 지난 해 12월 시작된 청원으로, 소상공인·소비자 모두 죽는 법안이라며 전안법을 합리적으로 개정 또는 폐지해달라는 게 골자였다. 이 청원은 청와대와 국회의 법개정 노력으로 지난 연말 법 개정이 이뤄졌다는 청와대의 답변이 있었다. 최근에는 국정농단게이트와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더구나 이 청원은 지난 5일 처음 발의, 8일 오전 7시 현재 해당 청원에 21만여 명이 참여해 불과 3일만에 공식 답변을 내놓는 기준인 `1달 내 20만명 참여`를 충족했다. 우리 사회에 재벌에 대한 비판과 공분이 어느 정도 번져 있는 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청원 제기자는 “국민의 상식을 무시하고 정의와 국민을 무시하고 기업에 대해 읊조리며 부정한 판결을 하는 판사에 대해서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청원은 우리 사회가 나름의 권위를 인정해왔던 법원 판결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사례로, 사회적 파문이 크다. 그동안 불합리한 법이나 관행에 대해 개선을 요청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권위의 상징인 법원에 대해 정면불복하며 이의를 제기, `탈권위의 확대재생산`이 예상된다. 소탈한 화법과 태도로 `탈권위`를 주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뿌린 씨앗이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꽃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