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원<br /><br />수필가
▲ 박창원 수필가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대형사고가 줄을 잇는다. 영흥도낚시어선 전복사고, 제천스포츠센터화재, 밀양세종병원화재가 그것이다.

대형사고가 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린 예가 있기에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집권초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잘 나가던 문민정부가 성수대교상판붕괴를 신호탄으로 대구지하철가스폭발, 삼풍백화점붕괴 같은 대형사고의 연속으로 민심을 잃었다. 바로 앞의 박근혜 정부의 몰락도 세월호 침몰사고가 도화선이 됐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가? 문재인 정부는 통상적으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설 만한 사안이 아닌데도 사고 현장으로 곧장 달려가는가 하면 국가위기관리센터를 가동하기도 했다. 제천화재, 밀양화재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수반하는 화재를 접할 때마다 2003년 12월, 대구 용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역까지 간 일이 떠오른다.

그 해 2월, 중앙로역에서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화재참사가 난 후 무려 열 달 동안이나 동대구역에서 교대역까지는 열차가 다니지 못했다. 화재 현장의 복구 문제, 시설물의 안전 문제, 거기에다 희생자 가족의 정신적 상처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대구지하철은 불구가 돼 있었다. 하계유니버시아드가 열린 기간(8월21~31일)에도 정상화되지 못했고, 12월에야 운행이 재개되었다기에 긴장된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다.

대구 도심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오만 생각이 들었다. 칠성역을 지나 대구역에 도착했다. 불이 났을 때 그 전동차가 이 역을 출발하지만 않았어도…. 대구역을 떠난 전동차는 중앙로역에 정차하지 않는다는 짤막한 안내방송만 내보내고는 반월당역까지 서행했다. 중앙로역은 어디가 역인지 분간도 안 될 정도로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눈을 감았다. 방화, 화염, 고함, 정전, 유독가스, 비명…. 불구덩이 속에서 벌어졌을 것 같은 온갖 장면들이 눈 속에서 어른거렸다. 불난 전동차 안에 갇혀 가족에게 거는 휴대전화 음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고, 매캐한 냄새가 콧속으로 전해오는 듯했다.

`사고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고가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 일련의 공식 같은 게 느껴진다. 경찰은 곧바로 사고 경위 조사에 들어간다. 담당부서에서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했나, 소방점검은 제때 했나, 공무원이 업자에게 뇌물을 받지 않았나 하는 조사를 하게 되고, 관련자 몇몇은 반드시 구속된다. 언론은 사회에 만연돼 있는 위험불감증을 질타하면서 사고의 문제점을 분석하느라 야단법석을 떤다. 그렇지만 몇 달만 지나 보라. 몇 달만 지나면 이런 일쯤은 저만치 비켜 있는 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안전이란 것은 인명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안전의식이라는 것도 국민 의식 수준에 다름 아니다. 수 년 전 미국 동부에 허리케인이 접근하고 있었다. 동부에 거주하는 처남 가족이 걱정되어 전화를 했더니, 허리케인 오기 이틀 전부터 모든 학교가 휴교 중인데, 허리케인이 처음의 예보와는 달리 그쪽으로 오지 않을 거란다. 우리라면 어떨까? 태풍이 몰아닥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해야 대피령을 내리고 휴교도 한다. 오지도 않는 태풍이 겁나 이틀씩이나 휴교했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거다.

안전이란 것도 결국 문화다. 참사를 당한 후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제도를 넘어 생활 속의 문화로 정착되어야 우리 사회는 비로소 안전해질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제 승용차를 몰고 포항시내에 나갔다가 아이 손잡고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용감한` 아주머니를 봤다. 조금 뒤 3명의 청소년이 안전모도 없이 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도 봤다. 저렇게 배우고 자란 아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는 그 날도 `안전 대한민국`은 기대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