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지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 터뜨릴 것 같은

저 눈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온 길들

눈 내려 지워진 산길따라 찾아간 옛집,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폐가로 변했지만 시인은 지난날의 온기를 찾으려 한다. 평생 노동현장에서 피땀 흘리며 걸온 고통과 상처의 길이 같이 따라와, 흰 눈 벌판도 덮지 못할 아프고 서럽고 힘겨운 생의 길이 같이 따라와 텅 빈 고향집 마당에 선 시인의 젖은 가슴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