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주<br /><br />방송작가
▲ 김은주 방송작가

얼마 전 생방송 뉴스에서 현직 여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인터뷰한 것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는 피해자 신분이 노출 될 것을 우려해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음성변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인터뷰는 피해자가 당당하게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밝히고 생방송 뉴스인터뷰에 나왔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검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엔 충분했을 지도 모른다.

흔히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 유발론과 가해자 온정주의가 동시에 작동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뉴스 인터뷰 이후에 여성 정치인의 미투 선언과 함께 정치권에 진출하려고 한다 또는 인사상 불이익은 그녀의 자질 때문이었다는 악성 루머도 동시 다발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최근 미국 할리우드의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초로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여배우들 뿐만 아니라 성추행을 경험한 유명 여배우들이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불고 있는 미투 운동만 보면 성폭력 사건의 주변인들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피해 당사자에게 미투 선언을 통해 지지를 하는 것과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피해자 유발론의 입장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서지현 검사 역시 검사라는 위치에 있지만,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돌이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 데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며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 인터뷰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필자는 공공기관 등에서 폭력예방교육을 하는 전문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대부분 일회성 강의로 폭력예방교육을 전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감당해야 한다. 얼마 전에 포항의 한 공공기관에 강의를 갔는데, 어떤 분이 상담할 내용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동료 남직원이 여자직원의 모함으로 불명예 퇴직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남자 동료는 퇴직을 불과 2년을 앞두었는데, 친밀감의 표현으로 한 스킨십을 두고 젊은 여자 직원이 문제제기를 해서 불명예 퇴직을 했다며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아니 딸 같고 가족 같아서 그런데 이렇게 예민하게 굴면 앞으로 직장생활 같이 하기도 어려운 거 아닌가요?” 그 분은 불명예 퇴직한 남자직원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해 연신 억울한 퇴직이라며 항변했다. 역시나 가해자의 잘못보다는 피해자에게 문제의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변인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의 경우엔 권력 관계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조직 내에 상하 관계가 명백한 상황에서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가해자에 대해선 “남자가 술에 취하면 그럴 수도 있지, 예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는 식의 온정주의가 팽배한 반면 피해자는 쉽게 꽃뱀화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폭력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는 것도 어려워한다. 그렇다면 피해자에겐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리고 전 국민이 다 지켜보는 생방송에 출현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들겠는가? 상상조차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불편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계속 그런 이야기를 듣고 불편해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미투 운동이 이어져 피해자가 더 이상 숨지 않는 그런 사회가 가장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마지막으로 서지현 검사님의 용기있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연대의 뜻을 보낸다. #ME T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