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야미 야스다카씨가 조사 보고한 울릉도에서 자란 마노 시게미쓰씨 증언 관련 문서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제공
▲ 하야미 야스다카씨가 조사 보고한 울릉도에서 자란 마노 시게미쓰씨 증언 관련 문서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제공
일본의 유명사찰인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의 큰 기둥이 메이지(明治) 초기 일본인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郞)가 울릉도에서 벌목해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히가시혼간지는 교토 역 앞에 위치한 일본 최대 불교종파인 신슈오타니파(眞宗大谷派)의 본사로, 일본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절로 꼽힌다. 이 절의 기둥은 울릉도산 케야키(느티나무·학명 Zelkova serrata Makino)로 지었다는 것.
 
한일관계사를 연구하는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는 2일 “울릉도에서 소학교를 다녔던 일본인 마노 시게미쓰(眞野重光)씨의 이 같은 생생한 증언을 담은 문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이 같은 문서를 발견하고 지난해 12월 일본에 건너가 히가시혼간지 신도들을 만나 면담한 결과 ‘이 사찰의 큰 기둥은 울릉도에서 가지고 왔다’고 했다”며 “일본 큰 사찰의 기둥은 대다수가 울릉도에서 왔다고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시마네현청은 지난 1953년 7월(쇼와 28년) 고위 지휘관 하야미 야스다카(速水保孝)를 울릉도에 파견했다. 독도의용수비대(1953년 4월 20일~1956년 12월 활동)가 일본어선을 포격, 한일간에 외교문제가 일어나자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가를 다시 조사해, 한국 외무부에 긴급회담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야미씨는 울릉도를 방문, 고문헌 고지도를 조사하고 독도에 와서 고기를 잡았던 역대 어부들의 의견과 일제통치 하에 울릉도에서 자라난 이들을 찾아 독도에 관한 상황과 울릉도에 살았던 이들의 당시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문서를 만들어 시마네현청에 보냈다. 이 문서에는 아버지가 울릉도 소학교 교장으로 3살 때인 메이지 말부터 울릉도에서 자랐다는 마노 시게미쓰씨의 증언이 나온다. 마노씨는 “명치 초년 이와사키 야타로가 울릉도에서 느티나무를 벌목,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울릉도 어업은 오징어와 고등어 잠수부는 일본인이 오야카다(주인)이고 일본인 조선인이 반반 정도 일했으며, 조선인은 기술을 몰라 밑에서 일했다는 등 당시 울릉도에서 일한 일본인의 생활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는 것.
 
김 소장은 “당시 울릉도에 사는 일본인은 대부분 시마네현에서 건너온 어부들로 이들은 고기잡이 뿐만 아니라 울릉도 나무를 무차별로 벌목해 일본으로 운반해가 사찰 건축에 사용했다”며 “일본 사찰의 기둥에 대한 역학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식 산림청 국립수목원 “우리나라 고대 건축은 소나무 외에 느티나무, 밤나무 등 굵게 자란 나무를 사용, 기둥이나 대들보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확인(사찰이나 서원 등)할 수 있다”며“추측컨대 일제도 울릉도에 자생했던 큰 나무를 일본 건물을 짓기 위해 수탈해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울릉/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