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래<br /><br />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옛날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헌 나무통을 집으로 삼고 몸에 걸친 누더기 한 벌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양지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데 알렉산더대왕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한 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기도 했던 알렉산더는 그리스에 훌륭한 철학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였지요.

그런데 막상 거지꼴을 하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보자 존경심보다는 우선 딱한 생각이 들어서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좋은 옷과 편히 살 집이라도 마련해주고 싶어서였겠지요.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자기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알렉산더대왕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왕은 지금 내가 쬐고 있는 햇볕을 가로막고 섰으니 옆으로 좀 비켜나 주시오. 내 소원은 그것뿐이오.”

그제야 알렉산더는 자기가 디오게네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만일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장면입니까? 천하를 손아귀에 쥐고 호령하던 영웅 알렉산더의 권세와 위용도 디오게네스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비폭력 불복종의 저항으로 대영제국의 식민통치를 인도에서 몰아낸 마하트마 간디 역시 유산으로 남긴 거라고는 손수 실을 잦던 물레 하나와 걸치고 다니던 옷 한 벌, 안경과 필기구 정도가 고작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간디의 위대성이 재물이나 권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청빈함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20세기의 성녀로 추앙받는 테레사 수녀도 그 자신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 전 세계의 수많은 고아들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입힐 수가 있었던 것이었고요.

우리나라에도 청빈의 전통이 있었지요. 조선조 초기 명제상으로 알려졌던 황희는 거의 평생을 관직에 있었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의 자리에만도 18년이나 있었지만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새는 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울타리도 없이 초라한 그의 거처를 방문했던 세종대왕이 그의 그런 생활을 몹시 부러워했다는 일화도 있는 걸 보면, 그의 가난함이 결코 그를 옹색하거나 초라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지요.

지금 우리는 물질만능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재물은 많이 가질수록 좋고 돈이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풍조는 전염병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고 자라나는 아이들까지 이미 감염이 되었습니다. 아파트 평수가 능력의 척도가 되고 자동차의 크기가 인격을 대신한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통념이지요. 그래서 많이 가진 사람들은 기고만장하고 못 가진 사람들은 기죽고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합니다. 그러니 부와 권세를 잡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하지요. 권모술수와 부정부패를 능력으로 생각하고 불법과 무질서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때 부와 권력을 누리고 휘두르던 사람들이 줄줄이 적폐세력으로 엮여서 철창으로 들어가고 돈 때문에 자행되는 끔찍한 패륜 사건들을 보면서도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개선의 여지가 없을 수밖에요.

청빈(淸貧)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성품이 깨끗하고 살기가 가난함`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동서고금의 성인현철들이 한결같이 청빈을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실천한 것은, 그저 단순한 안빈낙도나 자기수양을 위한 방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청빈한 삶이 어째서 시대착오적인 현실도피나 패배주의가 아니라 부패하고 혼탁한 시대를 준열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가장 아름답고 참된 삶의 덕목이 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파멸로 치닫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지속 가능한 것이 되게 할 유일한 길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깨닫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