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어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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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8.02.01   게재일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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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삶 같은 길을 빗겨 희망처럼 절망처럼 빛이 떠돈다.  
▲ 저 삶 같은 길을 빗겨 희망처럼 절망처럼 빛이 떠돈다.

“나에게 유일한 빚이 있다면 그날 아버지의 눈을 보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리라.”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벌써 20년도 전, 그날이 12월 26일이었나? 그의 친구가 최고의 `꼬장`을 보여 달라고 한 날이 아마 그날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그 친구의 생일이기도 했고 또 마침 친구의 부탁도 있었으니까,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술도 먹었겠다. 친구의 집이라 미안하긴 했지만, 주정을 보여줄 준비는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이상하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에 밟혔지 않겠나.” 그는 그 새벽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다짜고짜 죄송하다는 고맙다는 말을 부모님께 횡설수설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온통 정신이 맑아져 단호히 부엌으로 걸어갈 수 있었고, 드문드문 칼날이 빠진 부엌칼을 들고 손목을 그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꼬장이었고 쇼였으니까.

이 빠진 부엌칼이 손목을 지나갈 때 서걱댔고 서걱일 때마다 방바닥에서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한 번에 날카롭게 그어지지 않아 살은 쓸렸고, 또 썰렸다. 거긴 동맥이 있었으니까. 닿았을까,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들 앞에 그의 팔을 들이밀었고, 친구들이 우왕좌왕할 때 버짐처럼 번지는 꽃잎을 보며 그는 홀로 황홀히 혼절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쇼였고, 꼬장이었으니까.

그의 친구들이 119에 전화를 했더니 이런 자해는 접수가 안 된다, 112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 곡절 끝에 난생처음 경찰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때 미리 알아야 했다. 그의 쇼와 꼬장은 오로지 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국가적 통제 속에서 관리를 받아야 할 차원의 엄청난 쇼라는 것을.

그는 꼬장이라고 했으나 그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싸우기만 하면 “내가 죽어야지, 와 살아서 이 고상이고”라는 말을 버릇처럼 뇌셨다. 그건 모두 돈 때문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말만 할 뿐 왜 죽지 않는 것일까, 단지 살아있어서 살아야 하는 삶을 왜 내려놓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그의 유년에 대한 대가였고, 내가 갚아야 할 빚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당신의 삶 앞에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줄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집의 가난 대신 나라의 가난을 걱정했고, 집안에는 소위 불온선전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가득했다. 그 선전물 사이에서 그는 검게 그을린 박종철의 죽음을 대면했다. 이토록 자명한 죽음 앞에서 정치적 말들이 안개처럼 흩어져 죽음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 같다고 했으나 그것은 그냥 `개` 같은 말들이었다. 이것이 이 세계의 추악한 몰골이었고, 문드러진 진실의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역사라고 불리는 것들은 사실 켜켜이 쌓이는 허무의 먼지였고, 그의 부모의 삶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벤야민은 자살에 관해 가장 파격적인 말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파괴적 성격은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으로가 아니라 자살이 그에 수반되는 수고를 감당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으로 산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벤야민은 1940년 9월 26일, 자살이라는 수고를 감당해야 했다. 벤야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을 꼬장의 일부로 전락시킬 수 있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는 미련 없는 세상에서 자살이 꼬장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벤야민보다 더 철저히 삶의 무의미를 드러낼 수 있었다.

경찰들은 그를 병원으로만 옮긴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도 연락을 했을 것이다. 전화를 받고 그의 아버지는 그 전화를 끊자마자 서울로 올라왔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김천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다시 병원으로, 그 때가 8시는 되었을까. 아무리 빨라도 차로만 4시간은 족히 걸리는 서울까지, 병원에 누운 비겁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아버지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고 그렇게 서울까지 오셨으리라.

그때 그의 집은 젖소를 키우고 있었다. 그 영세한 그래서 조악한 생업은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젖을 짜는 것으로 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집을 나서야 했을 것이다. 그날도 그의 어머니는 분명 혼자서 젖을 짜야 했을 것이다. 당신의 배로 낳은 자식이 당신의 허락도 없이 죽으려고 손목을 그은 그날도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젖을 짰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 수고로움을 어머니에게 미루고 병원에 드러누운 비루한 자식을 만나기 위해 담배 한 대 태울 여가도 없이, 머뭇거림도 없이, 그를 보아야겠다는 확고한 의지 하나만을 가지고 서울로 향했던 것이리라.

그는 벽을 향해 돌아누운 채 아버지에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병원까지 오는 동안의 이야기를 했다. 당신의 남루한 꼴을 보고 택시운전수가 얼마나 오래 서울을 헤매다 이곳까지 왔는지, 터무니없는 택시비 앞에서 아버지가 말없이 택시 운전수의 이름과 면허 번호를 적을 때 택시 운전수가 그냥 가셔도 됩니다, 라고 말했노라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벽을 향해 돌아 누었으나, 또한 술이 채 깨지도 않았으나,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울음과 더불어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죽으려고 작정한 자식에게 그건 아무런 위안도 소용도 될 수 없는 말이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그의 등과 이야기를 했고, 가난한 아비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으나, 그 말 중 어떤 말도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채 한 시간도 머물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 날도 젖소는 저녁에 젖을 내놓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꼿꼿할 수 있었을까.

그의 등 뒤에서 울리던 말들이 수십 년을 걸어 그의 정면으로 돌아왔던 것일까. 오랜 시간이 흘러 그는 어렴풋이 그 말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것이 삶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죽으려는 아들을 보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던 상황에서조차도 삶은 조금의 친절이나 배려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삶은 여전히 삶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삶은 이토록 견고하다는 것을, 이 견고한 삶 앞에서 자살 따위로는 아무런 파문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삶에의 최대의 복수는 그래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것이 그의 어머니의 삶이기도 했으리라. 그렇게 그의 어머니는 삶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리라. 하여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꼿꼿했을 것이고 꿋꿋했을 것이고, 그래도 눈물은 움켜 쥔 주먹 위로 떨어졌을 것이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그에게 부채가 있다면 그때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는 것. 그의 아버지의 말들은 지구 반대편으로 수십 년을 걸어 결국에는 그의 정면으로 돌아왔겠으나, 돌아누운 그의 눈빛은 아버지에게 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눈빛은 당신에게 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닿을 수 없는 눈빛의 공백만큼 아버지의 한 구석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기실 위안은 그보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갚을 수 없는 빚임에 틀림없다.

빚은 빚으로 떠넘겨질 것이고 그 빚과 더불어 삶은 그저 한낱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삶은 그렇게 흘러가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그는 멀리까지 흘러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는 앞으로도 더 멀리까지도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 빚과 함께. 삶은 한낱 삶이지만 그래도 삶이니까, 삶은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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