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창올림픽 개막식 하루 전날인 2월8일 건군절 열병식을 치르겠다고 발표하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변수가 떠올랐다. 북한군 창건 70주년 행사라고는 하지만, 날짜부터 고의성이 짙다. 그동안 4월25일로 기념해오던 건군절을 갑작스레 혹한기인 2월8일로 변경한 것부터 수상하다. 평창올림픽을 핑계로 한미군사훈련마저도 연기한 마당에 얄미운 `뒤통수치기`를 당하고도 정부는 속수무책 처지인 듯하여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군이 지난달 말부터 평양 외곽 미림비행장 일대에서 병력 1만3천여 명과 전차·트럭·미사일 등 200여 대 장비를 동원한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애초 북한은 조선인민군 창설일인 1948년 2월8일을 건군절로 기념해오다가 김일성 주석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1932년 4월25일을 기준일로 변경해 지난 1978년부터 40년 가까이나 이날 기념행사를 벌여왔다.

정황을 살펴볼 때,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쏠린 국제사회의 관심을 활용해 열병식 이벤트를 준비해온 느낌이다. 전문가들은 핵과 미사일 같은 전략무기를 중시하는 김정은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선대 수령들과의 차별화를 모색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김일성 출생 105주년을 기념한 지난해 4월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체까지 공개했다. 당시 등장했던 각종 미사일은 이후 하나 둘 시험발사가 이뤄졌고 그때마다 한반도는 격랑에 휩싸였다. 오는 8일 진행될 열병식이 그 결정판이 될 경우 남북관계의 화해무드는 일순간 물거품이 될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기만당한 기분으로 언짢아진 민심을 들끓게 한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열병식에 대해 “평창올림픽과는 무관하며 우연히 날짜가 겹친 것”이라며 “북한의 내부적 수요에 따른 행사이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겨냥해 갑자기 하는 게 아니다”라고 남 말하듯 해설했다. 그의 발언에 대해 “뒤통수를 맞고서도 도대체 왜 북한을 대변하듯 말하느냐”는 비판이 거세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지만, 국가안보에 관한 한 통용되는 지혜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처럼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남북대화의 기회를 살려가려는 충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무리 절박해도 미국에 대해 한미훈련 연기를 요청했던 정부가 왜 저들에게는 “열병식을 연기하라”고 요구해보지도 못하는지 갑갑하다. 물론 정부가 허술히 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조금씩 저들에게 숙이기만 하다가 끝내 질질 끌려 다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슬금슬금 파고든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 결코 허투루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