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전쟁 난민과 빈민을 구호하려는 목적으로 1942년 옥스퍼드에서 설립된 빈민구호단체가 옥스팜(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이다. 옥스팜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 옥스퍼드 주민들이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던 그리스인들을 구호할 목적으로 결성했다고 한다. 지금은 80개가 넘는 회원국과 자원봉사자 3만을 거느린 국제적인 자선단체로 성장했다.

옥스팜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세계 최고 부자 42명이 세계인구 절반인 37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 부를 소유했다고 한다. 옥스팜은 2017년 자산규모 10억 달러 (대략 1조 원) 이상을 소유한 부호(富豪)가 2천43명이라고 밝혔다. 부의 불평등구조가 고착(固着)하는 것을 넘어서 계속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자료는 더 있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세계전체의 부는 약 280조 달러로 한화로 환산하면 30경 원에 이른다. 이것은 2016년 대비 9조2천640억 달러로 9천900조 원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늘어난 부의 분배는 터무니없이 불공평하다. 옥스팜은 새로 창출된 부의 82%가 상위 1%의 부자들에게 귀속(歸屬)되었다고 한다. 하위 50%의 소득은 변화가 거의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2천43명의 자산가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90%의 남성 부자가 세계전체의 부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에 착안하여 옥스팜은 여성과 남성이 동일노동 기회를 얻고, 동일임금을 받으려면 앞으로 217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진퇴유곡(進退維谷), 점입가경(漸入佳境),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앞장서서 주창한 신자유주의는 지난 세기말에 20대 80의 사회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고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쳐온 뒤 급속하게 1대 99의 사회로 전환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급속도로 진행되기에 이른다. 그 가운데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이름을 딴 `길가메시 프로젝트`. 한때는 숙적이었으나 훗날 절친이 된 엔키두가 이슈타르의 저주로 병들어 죽게 되자 길가메시는 영생불사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는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영생을 얻은 현자(賢者) 우트나피쉬팀에게 영생불사의 약초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길가메시는 고향인 우르크에 이르기 직전 호수에서 목욕하기로 한다. 그때 뱀이 나타나 약초를 물고 달아나버리는 바람에 빈손으로 귀환한다.

불로장생을 염원한 진시황처럼 길가메시도 영생불사를 꿈꾼다. 신화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21세기 인간은 죽음마저 넘어서고자 한다. 그것이 `길가메시 프로젝트`의 최종목표 지점이다. 죽음을 초월하여 영생불사하는 신(神)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열망이 과학과 기술, 자본과 결합하여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불과 50년 안에, 다른 이들은 늦어도 다음 세기 안에는 인류가 영생불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되리라 예측한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재출발한다. 영생불사를 꿈꾸는 사람들 모두가 그 열망을 이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 제약 때문에 제한된 소수(小數)의 사람들만이 그런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 자명하다. 평등한 죽음을 박탈당한 인간들의 분노와 절망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진다.

빈자든 부자든, 천재든 범재든, 영웅이든 노예든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었다. 죽음은 만민평등의 원칙을 확인하는 유일무이한 통로이자 계측 장비였다. 이제 그마저도 거부(巨富)와 빈자 사이의 거대한 장애물로 작용할지도 모를 일이다.`엘리시움`의 날이 머지않았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절대화하는 빈부격차와 소득 불평등의 나락에서 속히 빠져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