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고은 지음·발견출판사 펴냄시집·1만2천원

고은 시인 신작시집

`어느날` 발간

단시 217편 묶어

“이 세상 구석구석/ 벅찬 감동이여// 너도/ 너도/ 너도/ 살아/

잠 못 자는 심장으로/ 죽어/ 횅한 해골 눈구멍으로 감동을 먹어”

(고은 `어느 날 124`전문)

“`어느 날`은 자유를 위한 성찰과 통찰을 거쳐 `나`와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고 부정과 불의를 극복한 세상에 도달하려는 열망”

(문학평론가 이형권 )

고은(84) 시인이 신작 시집 `어느 날`(발견)을 펴냈다.

1958년 스물여섯의 나이에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한 고은 시인은 그간 참여시 계열의 대표적인 민족시인으로, 독재정권과 싸우는 재야운동가로 인식됐지만 그의 시는 참여·순수의 구별은 물론 시공간, 이승과 저승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세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시집은 그동안의 시와 달리 노년의 삶에 대한 허무 의식과 시에 대한 원숙한 의식을 전경화한 거장의 감동적인 시편이 새롭게 다가온다.

시집엔 `어느 날`이라는 제목의 단시 217편이 묶였다. 미수(米壽)를 앞둔 노시인의 원숙하고 노련한 시적 상상력을 맛 볼 수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과 부면들에 대한 통찰과 관련되는 비판과 저항 정신이 번뜩이지만 통찰이나 비판의 대상이 반민주주의 사회에서 비인간적인 사회,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 배타주의적 편견 사회 등으로 확장되는 점이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 젊은 날의 고은 시인
▲ 젊은 날의 고은 시인

또한 현실의 편견과 아집을 벗어버린 자유의 시간, 시의 시간을 오롯이 담았고, 노년의 시간에 다가온 허무와 죽음 의식 또한 삶에 대한 하나의 인식 방법으로 구체화돼 나타나 있다.

이번 시집의 시들은 모두 짧다. 제목처럼 어느 날 시인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불교의 선(禪)문답처럼 한두 마디씩 풀어놓은 듯하다.

시인은 이런 짧은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1960년대부터 단시를 쓰는 버릇이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며 여기에 이른다. 저 중앙아시아 알타이 고원이나 거기서 더 서쪽인 스카타, 이들에게 지향 없이 이어지는 구비서사의 긴 음영(吟詠)은 어느덧 해 뜨는 한반도의 나머지까지 그 핏줄이 이어진다. 그래서 나의 유서 깊은 서사본능은 몇 개의 장편 시편들 낳고 또 낳을 것이다. 바로 이런 역정의 시 가녘에서 단시의 반증이 나선다. 솥뚜껑 위의 참깨인 양 튀어 오르기도 하고 두메 샘물로 넘쳐나기도 한다.”

시는 짧은 한두 줄로 끝나지만, 참선하는 수도자들이 진리를 찾으며 주고받는 대화처럼 그 안에 어떤 진실이 담겨 있다.

이형권 문학평론가는 “`어느 날`은 자유를 위한 성찰과 통찰을 거쳐 `나`와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고 부정과 불의를 극복한 세상에 도달하려는 열망을 노래하려는 연작시”라고 설명했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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