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br />수필가
▲ 김순희 수필가

포항에는 오일장이 열리는 곳이 많아서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주말이면 장기에 있는 시댁에 자주 가게 되는데 집을 나서며 2일·7일이면 흥해장, 4일·9일이면 안강장, 5일·10일이 들어간 날이면 반드시 오천장에 들른다.

오늘은 드라이브도 할 겸 빙 둘러가는 길을 택했다. 3일이니 구룡포 장날이다. 잘 뚫린 영일만도로를 타고 가다 미끄러지듯 내려서면 푸름한 바닷내음이 가득한 항구가 나타난다. 고깃배들이 우리보다 먼저 달려와 일렬로 서 있는 부둣가 주민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시장이 가깝다.

입구는 조금 더 가야 나오지만 나는 샛길을 좋아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어깨가 맞닿아 비켜서기도 힘든 지름길로 가는 것이 더 재미지다. 그 좁은 골목길로 살곰살곰 들어가면 시장의 중간쯤이 나타난다.

오늘은 운이 좋다. 넓은 어시장이 있는 죽도시장에 가서도 시간이 맞아야 볼 수 있는 개복치 해체 작업을 구룡포에서 보게 된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가려던 길도 잊은 채 아예 붙어 서서 보았다. 우리 마음을 아시는지 뭘 살거냐 묻지도, 가라고 떠밀지도 않고 능숙하게 칼질 삼매경 중이다.

아주머니에게 우리가 먹는 하얀 묵이 살로 만든 것인가 묻자 내 얼굴을 힐긋 보더니 “껍질을 묵지. 살은 조안에 따로 비지요?” 두툼한 살인가 했던 것이 껍질이란다. 참 얼굴도 두꺼운 녀석이다. 언뜻 보면 머리뿐인 개복치니 말이다. 관광객인지 모녀가 지나가며 “고래를 잡나보다”하고 중얼거렸다. 개복치라고 고쳐 말해주니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처음인 물고기라며 이름을 다시 묻는다. 개.복.치.

남편은 아버님이 기다리니 그만 장을 보러가자고 재촉이다. 한 봉지 사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구룡포장에 가면 우리가 꼭 들르는 곳은 국수공장이다. 가게 안쪽 마당에서 해풍에 노랗게 말린 국수를 주인할머니가 아들과 썰고 계셨다. 구경해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그러라 한다.

할머니 시집살이만큼 오래된 기계에서 뽑은 면은 대나무 발에서 바람과 햇살을 받아 바싹 마른다. 마른 국수발은 두툼한 전용 칼로 쓱싹 눌러 자르는데 국수 부스러기가 투두둑하고 떨어진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내가 이건 버리느냐고 물으니 다 쓸데가 있단다. 새 키우는 사람들이 가져가 사료로 쓴다고 한다. 때 마침 참새가 발밑에 떨어진 국수를 쪼으러 포르르 날아들었다. 이 집 국수가 맛있는 건 하늘 위에서도 잘 보이나보다. 마트에서 파는 국수보다 삶아 놓으면 쫄깃한 맛이 일품인 `제일국수`는 할머니의 오랜 손맛과 해풍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몇 해 전에는 물려 줄 자식이 없어서 나 죽으면 문 닫는다 하셨는데, 오늘은 아들이 일을 배우기로 했다며 웃으시는 입가에 자랑스러움이 잔뜩 묻어난다. 예전에 장날에만 국수를 만들어 판다던 말이 생각나 여쭈니 “무신날에도 한데이~”하며 허리를 펴신다.

시장 입구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며 건어물가게에서 코다리 두 두름을 흥정해서 4천원 깎았다. 값을 치르며 시장의 가게이름들을 보니 구룡포인데 장기 기름방, 오천 떡집, 영주 한약방 같이 다른 고을이름을 달고 있다. 거스름돈을 거슬러주시며 다들 고향이 그곳들이라 붙인 거라고 했다. 철규 분식처럼 자식 이름을 붙인 가게도 여럿이었다. 떠나온 곳이 그리운 이는 나고 자란 고향을 머리에 이고서 그리워하고, 집 떠난 자식이 보고픈 이는 자식 이름을 걸어놓고 치열한 삶을 살며 그리움을 달랬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지헌이엄마가 된지 25년. 아들이 기숙사로, 원룸으로 살림을 난 지 5년이 넘었다. 현관문에다 지헌이네집이란 팻말을 달아야 할까보다.

구룡포 시장에서 찬거리를 두 손 가득 샀다. 그리움을 덤으로 얹어서 그런지 더 푸짐했다. 오일장에는 흔한 바코드 대신 오래 묵은 흥정이 있다. 내가 오일장에 자주 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