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속도 못 내는 포항 지진피해 이재민 대책

석 달째로 접어든 11·15 포항지진 이재민들의 이주 대책 등 핵심적인 피해 수습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진전이 없자 포항시 등 행정 공무원들은 관련 업무가 반복·장기화되며 피로가 누적되고 있고, 남은 이재민들 역시 강추위 속에 기약없는 대피소 생활만 이어가면서 정신적·육체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포항시는 지난 22일 “지진 피해 주민 가운데 80%가 이주를 마쳐 이재민들의 새 보금자리 찾기가 막바지를 향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즉, 건축물 안전진단 결과 위험 판정을 받은 공동주택과 전파·반파 주택 이주대상 610가구 중 80%인 488가구 1천239명이 이주를 마쳤다는 것. 하지만, 이재민 사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포항시가 밝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주 대상 아닌 `소파` 가구
市, 살던 곳 복귀 설득에도
지진 트라우마 호소하며
대피소 생활 계속 이어 가

특단의 접점·대책 없으면
이주 시한 2월말 넘길 듯


□ 이주 대상에서 제외된 144가구가 문제

이주 대상자가 아직 122가구(22일 기준)가 남아 있지만 이들 역시 1월말까지 55가구, 2월말까지 67가구가 이주를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돼 한정적으로나마 대상자 모두가 주거안정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주 대상에서 제외된 가구다. 대피소 2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재민은 217가구 484명(흥해실내체육관 153가구 324명, 기쁨의교회 64가구 160명)이다. 이들 가운데 새 거처를 찾는 동안 임시로 머무르는 73가구를 제외하면 이주대상자가 아닌 가구의 수는 144가구다. 즉, 이들 144가구가 앞으로의 포항시 피해 수습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질적인 `이재민`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포항시는 이들 144가구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부분이 소파 가구여서 이주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주거지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도록 꾸준히 설득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거지 파손 여부를 떠나 이재민 입장에서는 지진을 온몸으로 겪었던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포항시의 안일한 `설득`을 통해서는 결코 해결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이들 144가구의 대피소 생활은 포항시의 이재민 수습 완료 목표 기한인 2월말을 넘길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일선공무원의 지진 업무 장기화로 인한 행정누수

이재민들에 대한 대책추진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관련 업무을 맡고 있는 공무원들의 피로도 가중되면서 행정적인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흥해읍사무소를 비롯한 현장공무원의 경우 장기간의 비상근무 탓에 4명이 공황장애 등으로 입원한 상태다. 이들 뿐만 아니라 구청, 시청 등 지진피해 수습을 맡고 있는 대부분의 공무원 역시 본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시민들에게 정상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할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고 있다.

이재민들의 대피소 생활 장기화는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3일 기준 총 4만439명의 자원봉사자가 지진 피해 이재민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섰으며, 하루를 기준으로 하면 흥해실내체육관은 100명 내외, 기쁨의교회는 40명 내외가 매일 식사 제공과 청소 등의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실질적인 이재민 `144가구`를 구성원 2명씩만 잡아도 약 300명. 이들 300명을 위해 대규모 인원이 계속 투입되자,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지진피해 복구와 일자리 창출, 경기회복 등에 써야 할 인력이 기약 없이 낭비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정부 차원의 대책반 구성 필요

시간만 끌고 있는 이재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를 넘어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자체에 모든 것을 미루지 말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재민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주거지 피해 판정 여부로만 결정되는 이주 대상 선정도 더욱 범위를 넓히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도 주목된다. 저마다 사정은 있겠지만, 이재민의 경제적인 현실과 신체적인 장애 등의 상황이 `소파`라는 주거지 피해 판정에 묻히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이재민은 장기화되는 대피소 생활에 대해 “지진 트라우마도 문제지만, 세금과 인력을 낭비하는 원흉으로 보는 싸늘한 눈길을 받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현장의 공무원 역시 “포항의 이미지 면에서나 지진 피해 수습 면에서나 기약없는 대피소 운영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문제가 하루 빨리 마무리돼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장기화될수록 모두에게 손해인 대피소 운영문제에 포항시와 중앙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시급한 시점이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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