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주 중국 중경 상해 임시 정부 청사를 돌아보고 왔다. 단체 여행길에는 룸메이트를 잘 만나는 것도 커다란 행운이다. 나는 어느 여행이나 주최 측의 방 배정에 무조건 따르면서도 누가 메이트가 될지 항상 궁금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최고령인 87세 K선생님과 한방을 쓰게 됐다. 가끔 어느 모임에서 뵙는 분이지만 잘 모르는 분이다. 주변에서는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게 됐다고 격려까지 해줬다. 선생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이만 약간 느릴 뿐 여행일정을 잘 소화했다. 노인과 날씨는 예측할 수 없다지만 현 상태로 봐서 선생은 90은 거뜬히 넘기고 백수 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점차 늘어나 남자 78세, 여자 82세로 나타나 있다. 오늘날 모두가 건강과 장수에 관심이 많은 결과이다. 건강 관련 책들이 여기 저기 쏟아져 나와 모두 건강 전문가가 된 듯하다. 나는 이번 80대 후반인 그분과의 여행을 통해 그의 건강 비결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여행한 일행이 찬탄해 마지않았던 건강 비결은 잘 먹고 잘 자고 매사에 잘 적응하는데 있었다. 짧은 일정이지만 내 나름으로 판단한 그의 건강과 장수 비결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선생은 무엇이나 잘 드셨다. 중국 고급 호텔의 아침 뷔페 식단은 종류도 많고 풍부했다. 우선 선생은 아침부터 쟁반에 담아온 식사량이 젊은이 못지않게 많았다. 채소에서부터 다양한 육식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담아온 그의 식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후식으로 계란과 떠먹는 요구르트, 커피까지 드셨다. 그는 `젊었을 때는 참 많이 먹었는데` 하시면서 식사의 속도도 나 보다 빨랐다. 흔히들 소식(小食)이 장수한다고 하지만 그분의 식사량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의 장수 비결은 모든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데 있는 듯 했다.

어느 여행길이나 식사 시 반주가 있기 마련이다. 중국의 기름진 요리에는 독주인 고량주가 수반됐는데 그의 주량은 우리 일행 17명 중 가장 많았다. 젊은 시절의 주당들도 나이가 들면 금주하기 마련인데 선생은 젊은이 못지않게 술을 즐겼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그는 집에서 가져온 과실주 한 컵을 보충하셨다. 호텔 방에서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의 애창곡 `고장 난 벽시계`를 구성지게 불렀다. 다음날 조선족 식당에서도 그는 김정구의 `두만 강 푸른 물`을 자청해 불러 일행의 갈채를 받았다. 술은 건강을 해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은 셈이다. 그의 취흥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저녁 일정이 없을시 중국 텔레비전(CCTV)을 함께 보았다. 우리식 연예 프로그램에는 중국의 미인 가수들이 수없이 등장했다. 선생은 `중국 미인도 대단하네`하면서 감탄하면서 시청했다. 주변의 어느 노인은 미스 코리아를 보아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어른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드는 성적인 욕망인 리비도가 생명의 원천이라고 했는데 그는 아직도 청년기의 욕망을 지닌 듯 했다. 중국 사천 성 성도의 유명한 금리 거리, 어느 식당에서 맥주 몇 병을 주문하니 중국 미녀 악사가 전통 악기까지 연주해 주었다. 선생은 악사의 가락에 맞추어 춤까지 덩실덩실 추었다. 노인은 일주일에 한번 씩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니 부럽기까지 하였다.

흔히 인명(人命)을 재천(在天)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건강을 유별히 챙기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웰빙 식을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던 친구가 두문불출이다. 이번 80대 후반 노인의 건강을 보면서 장수비결은 별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즐겁게 사는 것이 건강의 첫째 비결이 아닐까. 건강은 섭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행복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의 마인드가 장수의 첫째 비결임은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