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반파와 배분방식 달라
서로 권리 주장 `옥신각신`
1만여 가구, 갈등 관계 추정

*사례1 “세입자가 을(乙)인데요 뭐. 어쩔 수가 없습니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최근 지진을 겪고 난 뒤 피해신고부터 수리까지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집주인에게 연락해 피해 상황 등을 알렸지만, 집주인은 “알아서 잘 처리해 달라”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 이후 해당 아파트는 `소파` 판정을 받았고 A씨에게는 재난지원금과 의연금이 각각 100만원씩 지급됐다. 하지만 문제는 보상금이 지급된 이후 발생했다. 집주인이 “지진피해를 입은 아파트 소유주가 보상금에 대한 권리가 있다”며 200만원 전부를 내놓으라고 통보한 것. A씨는 “이곳저곳에 알아본 결과 실거주자에게 지급되는 것이 맞다고 하는데 집주인이 막무가내로 내놓으라고 해 당혹스럽다”며 누구를 위해 피해신고부터 복구까지 동분서주 했나싶어 너무 억울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사례2 월세를 놓고 있는 B씨는 이번 지진으로 발생한 물질적 피해보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으로 입은 정신적 피해가 더 크다. 다행히 보유한 주택이 `소파` 판정을 받는 등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수리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게 생겼기 때문이다. 즉, `소파` 판정에 따라 지원금이 지급됐지만, 이를 수령한 세입자는 주택에 대한 피해복구는 나 몰라라 한 채 연락도 잘 받지 않는 상황. 수차례 전화와 문자를 보낸 결과 최근 겨우 연락이 닿았지만, 지원금 배분과 관련한 세입자의 대답은 `NO`였다. 오히려 세입자는 “지진을 겪은 건 나인데 왜 지원금을 줘야 하느냐”며 “한 푼도 줄 수 없으니 연락하지 마라”고 으름장을 놨다. 더구나 다음 달이면 계약이 만료돼 이후에는 세입자에게 더이상 연락하기도 힘든 상황이 다가오고 있어 B씨는 그냥 지원금을 포기할 생각이다.

11·15 포항 지진 피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과 의연금이 최근 지급된 이후 `소파` 판정을 받은 주택의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존재하는 주택의 경우 이들 모두에게 각각 재난지원금과 의연금이 따로 지급되는 `전파` 혹은 `반파`와 달리, 실거주자에게만 지급되는 `소파` 판정은 금액의 분배를 두고 소유자와 세입자가 충돌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각 지원금의 용처에 대한 설명마저 부족하자, 금액의 배분과 사용 방안에 대한 소유자와 세입자간에 의견이 달라 감정싸움으로 심화되고 있다.

□세입자 규모 생각보다 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지원금을 둘러싼 분쟁의 규모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전파 및 반파 세대의 세입자는 총 724가구 중 1/3가량인 248가구 수준. 하지만 소파는 단독주택이 많은 전파 및 반파와 달리 대부분이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이어서 세입자의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포항시는 “2만6천여 세대의 소파 판정 거주지의 세입자 비율은 거의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본다”며 “지원금을 둘러싼 문의가 계속되고 있어 시 입장에서도 난감한 것이 많다”고 밝혔다.

□재난지원금은 `수리용`, 의연금은 `세입자 소유`

포항시에 따르면 `소파`로 판정받을 경우 지급되는 지원금은 재난지원금 100만원과 의연금 100만원까지 총 200만원. 이 중 재난지원금은 `수리`가 목적이다. 포항시가 밝힌 행안부 규정에 따르면 `실거주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다만, 세입자가 수리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지원금의 1/2은 소유자에게 지급토록 한다`는 것이 요지다. 즉, 세입자가 수리를 전부 도맡아서 한다면 지원금 전부를 사용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반반씩 나누고 소유자가 수리를 전담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의연금의 경우는 간단하다. 지진을 겪은 피해 주민에 대한 `위로금`의 성격이기 때문에 실거주자인 세입자가 100% 사용하면 된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소파` 판정 주택의 경우 임대인인 집주인은 의연금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볼 수 있다.

□ 관련 규정에 대한 수정 필요

1만여 가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이러한 보상금 관련 갈등이 심화되자 해당 규정에 대한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파나 반파와 같이 애초부터 임대인과 임차인을 구분해 지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홍수 등과 달리 지진에 의한 피해는 세입자보다는 건물 자체에 대한 피해가 큰 만큼, 의연금도 전적으로 세입자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닌 소유자와의 배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일단 재난지원금 민원에 대해서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반반씩 가질 수 있도록 중재에 노력하고 있다”며 “시에서 이에 대해 강제할 권한은 없어 최대한 서로 조금씩 양보할 수 있도록 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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