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은 오래 전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에서 인터넷 매체의 폭력성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피해를 입은 작가와 연예인들을 예로 들며 “요즘 매스미디어를 보면 미쳤거나 덜 떨어졌거나 아니면 뇌를 다쳤거나 그런 상황인 것 같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네트(Net)의 폭도들`이라는 용어까지 동원해 `사이버 인민재판`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요즘 진보논객들이 감초처럼 동원하는 예시(例示)가 있다.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경비병 출신의 94세 노인에게 학살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70년이 지났어도 5년 징역형을 내렸다는 사례다. 아무리 좋게 들어도 작금의 적폐청산을 인류최대의 학살비극인 홀로코스트 범죄 단죄에 빗대는 건 너무 지나치다. 그들 심부에 깊숙이 박힌 모진 `적대감`의 실체란 대체 무엇인가.

친박(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하는 구 정권인사들은 아무래도 당분간 속수무책이지 싶다. 그들의 모습은 밀림에서 맹수에게 급소를 물린 먹잇감 꼴이다. 어쩌다가, 무심히 받아 쓴 `특활비`올무에 걸려 줄줄이 꼼짝달싹을 못하는 처지가 됐을까. 아무리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의 의기양양이 무상하다.

문재인정권이 펼쳐가는 적폐청산 드라이브의 구조를 살펴보면 용의주도한 그물이 보인다. 사정당국과 언론매체와 포퓰리즘과 쇼맨십이 촘촘히 잘 엮여져 있다. 한번 걸려들면 웬만해서는 빠져나오기 힘든 패러다임을 갖추고 있다. 먹잇감을 찾아 지목하고, 혐의사실을 매체에 흘려 민심을 자극하고, 잡아채어 치죄하는 과정이 상당히 정교하다.

정권은 국가경영을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한데도 집권세력이 스스로 곧 국가인 양 행동하는, 우리정치의 병폐는 바뀐 게 없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전 정권의 구린 구석을 까뒤집어 망신 주는 일을 권력지탱의 불쏘시개로 쓴다. 문재인정권 역시 그런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선거 공신들을 낙하산 태워 내려 보내는 행태부터 똑같다. 공영방송을 들쑤셔 입맛에 맞지 않는 경영진을 끌어내리는 소란도 마찬가지다. 정부 각 부처와 기관 칸칸마다 조직을 만들어 헤집는 방식으로 아적(我敵)을 가려내는 기술은 훨씬 더 공교롭다. 시민운동가가 주도하는 적폐청산위원회 또는 적폐청산 TF(태스크 포스)가 온갖 속살을 다 들여다보고 먹잇감 발라내듯 유리한 증좌만 찾아내는 재주도 놀랍다.

국민들은 이제 이 소동의 과속스캔들이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적폐청산`이라면서, 한사코 `정치보복`은 아니라면서 그 동안 그 흙탕물에 같이 뒹굴며 살았는데 어째 진창 묻은 요인(要人)들은 죄다 한쪽 성향뿐이란 말인가. 아무리 불공정한 게임이라도 5대0, 10대0도 아니고 100대0으로 펼쳐지는 경기라면 수상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묻는다. 문재인정권은 왜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못 잡아넣어서 안달이냐고.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비극에 대해 복수하려는 작심 아니겠느냐는 추론만 그럴듯하다. 적폐청산 폭풍 속에 펼쳐지는 정권과 언론과 사법기관의 서슬이 이렇게 시퍼런데, MB는 과연 무탈할 수 있을까. 문재인정부는 `혁명정부` 맞나. 자문기관에 불과한 위원회를 동원해 기밀들을 다 뒤져내는 것은 철두철미 합법적인가. 봉인해놓은 국가 간 협약마저 차례로 까발리고 뒤집어 대한민국의 신인도를 추락시키는 행위는 정말 괜찮은가. 정부여당의 행태가 나라꼴이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정적을 제압하고 지지율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흑심의 발로가 부디 아니길 빈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권력의 숲 속에서 `오만방자(傲慢放恣)`보다도 더 미련한 짓은 없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데, 이 지리한 캥거루 법정의 `인민재판`드라마는 언제쯤이나 끝나나. 과속스캔들이 필경 빚어낼 또 다른 `청산` 소동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