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 연말 북한 김정은 노동당 당위원장은 전국 노동당 당 세포위원장회의에서 `비사회주의` 현상의 섬멸을 지시했다. 비(非)사회주의란 북한식 사회주의에서 이탈하려는 현상이나 징후를 말한다. 그는 나름대로 북한 땅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척결해야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주체라는 미명하에 `장막속의 안정`을 추구하는 북한 통제 사회에도 자본주의적 현상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그들이 바라는 사회주의적 혁명적 요소보다 자본주의적 현상이 강해질 때 그들 체제의 안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사회의 비사회주의적 현상은 체제나 제도의 개혁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배급경제 보다는 시장 경제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을 수 없다. 고난의 행군 후 장마당에서 출발한 종합시장은 이제 400여 개로 확산된 실정이다. 집에서 만든 음식이나 수공업제품까지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주민들은 이제 생필품을 시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집단 농장의 생산량이 한계에 이르자 개인의 자유 경작이 가능한 소토지 개발은 늘어나고 있다. 주민들은 개인이 경작하는 채전(菜田)인 `남새밭`의 수확량을 늘려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국영이나 집단 소유의 유휴 공장은 개인에게 임대하여 봉제 공업을 하는 사람까지 있다. 북한 시장 경제가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에는 미치지 못하나 시장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사회에서는 시장의 증가에 따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는 확산일로에 있다. 평양에는 벌써 영업용 택시뿐 아니라 주유소도 늘어나고 있다. 평양의 오락시설이 늘어나고 호텔의 양주 코너까지 등장하고 있다. 가라오케 노래방에서는 `고난기 노래`라는 이름으로 남한의 흘러간 노래가 애창되고 있다. 주민들의 복장은 컬러풀하고 여성들의 화장은 짙어지고, 헤어스타일까지 바뀐다. 평양뿐 아니라 어딜 가나 `아리랑 손 전화`를 사용하여 이미 300만대를 넘어섰다는 보도도 있다. 시장에는 남한산 쿠쿠 밥솥과 담배까지 밀거래 된다. 북한의 젊은 세대들은 암시장에서 구입한 CD를 통해 남한의 인기 걸그룹의 노래를 듣고, USB로 드라마까지 시청한다. 공안 당국이 압수한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당 간부들이 돌려 본다는 소문까지 있다. 모두가 `북한에 상륙한 한류`인데 비사회주의적 현상의 핵심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는 북에 부는 `황색 바람`이라고 단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바람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북한의 장마당 세대들은 겉으로는 수령과 당에 충성하지만 속으로는 개방적인 소비문화를 선호한다. 그들이 주체사상이나 수령 영도론, 사회정치 생명체론을 어릴 때부터 교육받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다. 당의 이념성 보다 소비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주민들은 국가와 당이 요구하는 공식적 규범과 개인의 실리적 규범의 괴리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 관료들의 보편적 뇌물관행에도 표출되고 있다. 자녀들의 대학과 직업 선택에도 이러한 경향은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사상 관련 학과 보다는 무역이나 컴퓨터학과들의 과학 기술계를 선호한다.

북한 당국은 과연 비사회주의적 요소를 척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일시적 통제는 가능하지만 항구적 단속은 불가능하다. 사라예보 지첵이 예언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혼한다`는 아름다운 역설이 북한 땅에도 상륙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는 그 침투력이 강해 사상교육이나 감시만으로 역부족이다. 북한 당국은 시장을 단속하니 그 부작용이 너무 커 통제와 이완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북에 부는 한류라는 바람도 일벌백계로 단속하지만 근본적인 차단은 사실상 어렵다. 이러한 소비문화에 대한 동경이 탈북자 3만명 시대를 낳은 것이다. 북에 부는 비사회주의 바람은 언젠가는 통일의 바람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