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희 림

너와 그녀도 남이 아니었구나

그녀의 너와, 너의 그녀도 남이 아니었구나

너의 어머니도 너의 과거도 너의 제주도여행도 남이 아니었구나

네게서 전화가 왔다

너의 문자가 연분홍 치마를 입고 왔다

전화기 속으로 너는 울컥울컥 속을 게워냈다

내가 아기를 낳으면 그것은 전화기다

너의 전화기도 나의 전화기도 남이 아니었다

너의 어머니도 남이 아니었다

내가 어머니를 만들면 그것은 너다, 알겠니

알겠니? 그것을

사랑하는 딸의 결혼, 신혼여행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시인은 질기게 물고 물리며 이어지는 가계와 운명의 내림을 느끼고 있다. 시인의 어머니도 시인이라는 어머니를 낳았고 시인 역시 머지않아 어머니가 될 딸을 낳았던 것이다. 끈끈하게 이어지는 피의 내림에 대해, 그 운명적 이어짐에 대해 딸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다 그런 운명적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