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불의 눈꺼풀에 속눈썹 자라난 `우담바라`.
▲ 석불의 눈꺼풀에 속눈썹 자라난 `우담바라`.

△상상의 꽃 `우담바라`

해마다 신문에 등장하는 수상한 꽃이 있다. `우담바라`라는 꽃인데 혹시 들어보셨는지? 이런 식이다. “`전설의 꽃` 우담바라, 전주서 발견?”, “3천년에 한 번 피는 꽃”, “대둔산 암자 동굴서 피어난 전설의 꽃 우담바라”, “전설의 꽃 `우담바라` 부산 성봉사에 나투다” 등등.

우담바라는 우담화로도 불린다. `금강경`에 따르면 3천년에 한 번 핀다고 한다. 또 `법화의 소`에는 “인도에 그 나무는 있지만 꽃이 없고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면 이 꽃이 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륜성왕이란 인도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시키고, 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을 일컫는 말이다. `일체경음의`에서는 “상서로운 구름과 같이 하늘에 피는 꽃이며, 세간에 이 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체경음의`보다는 `금강경`이나 `법화의 소`를 따라 인간세계에 이 꽃이 있고, 훌륭한 통치자가 나타나면 이 꽃이 필 것이라고 믿는다. 꽃이 없는 식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포자로 번식하는 고사리와 같은 선태식물은 민꽃식물 혹은 은화식물로 불린다. 이런 것은 꽃이 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포자 역시 꽃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꽃이 없는 식물은 없다. 우담바라는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에 꽃이 피는 매우 특이한 식물이다. 전륜성왕의 출현으로 세상에 복덕이 널리 퍼지고 삶이 혁명적으로 전환될 때 이 꽃은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우담바라가 나타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혁신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 혁신적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하기 위한 상징이 우담바라인 것이다. 즉 우담바라는 실체가 없는 상상의 꽃일 뿐이다. 불교 경전에는 꽃을 자세하게 묘사하지도 않았고, 그림으로 남겨 놓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우담바라가 핀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특정한 것을 우담바라라고 믿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우담바라가 우담바라로 불리게 된 과정을 한 번 따라가 봤다.

△자비와 구도의 상징, 우담바라

우담바라가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남지심의 장편소설 `우담바라`가 출간되면서부터다. 고려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젊은 여승이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것! 그것은 아름다운 자비인가, 파계인가!”라는 자극적인 홍보문구와 함께 주요 일간지에 광고로 실리게 된다. 1988년에는 “비구니 그녀의 몸은 연꽃인가 불구덩이이인가! 구도, 그 뜨겁게 타오르는 애욕의 불꽃과의 싸움!”같이 더욱 자극적인 광고문구로 바뀌었다. 이 소설은 1990년대 초까지 꾸준히 광고되었고, 이 소설을 영화한 동명의 영화가 1989년 개봉되면서 우담바라는 대중의 단어가 되었다.

문헌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보자면 우담바라는 석가나 훌륭한 통치자의 등장으로 인간의 삶이 혁신적으로 변화할 때 피는 꽃이다. 그런데 `우담바라`라는 소설과 영화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이 꽃을 `구도와 자비`의 상징으로 이해하게 된다. 1999년 5월 22일, 한국방송공사 1라디오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우담바라가 피기까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고행수도를 통해 성불을 이룬다는 우담바라의 의미를 찾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담바라`는 대중들에게 구도와 자비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의미로 유통되고 소비된다.

△우담바라의 등장

이때까지만 해도 우담바라는 상징적인 꽃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97년에 들어서면서 실체를 갖기 시작한다. 그 해 7월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우리절에 금동여래 불상 우편 가슴에서 우담바라 스물 네 송이가 폈다고 각종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것은 우담바라라고 말할 어떤 문헌학적 근거가 없다. 심지어 `법화의 소`에서는 이 꽃이 나무에 핀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단지 불상에서 피어났다고 우담바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우담바라는 2000년부터 봇물 터지듯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마 새로운 세기로 접어드는 때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해 7월 충남 계룡산 대전 광수사, 10월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청계사, 비슷한 시기 서울 관악산 용주사 연주암 등에서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우담바라를 자비나 구도의 상징이 아닌 길조나 행운을 상징하는 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소문이 나면 많은 사람들이 해당 절에 몰려들었다. 실제로 경기도 의왕시 천계사에는 우담바라가 폈다는 말을 듣고 하루에 5천명이 넘는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

△우담바라의 실체 혹은 우리의 믿음

이후 불상에 피어난 우담바라의 사진이 대중적으로 확산된다. 그래서 아주 가는 대궁이에 밥풀 같이 생긴 흰 꽃을 사람들은 우담바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우담바라가 비단 절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에도 피고, 심지어 아파트 방충망에도 피었다는 것이 보도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화장실, 은행, 소나무, 자동차, 편의점, 주유소, 학교 등 도처에서 우후죽순 발견하게 된다. 뭔가 수상하지 않은가?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우담바라가 처음 피었다는 말을 듣고 식물학자들이 이 꽃을 조사해보려 하였으나, 스님들은 신선한 꽃이라 하여 이 꽃의 샘플 채취를 막았다. 그런데 많은 곳에서 이런 우담바라가 발견되니 그 실체는 금방 드러나고 만다. 그것은 다름 아닌 풀잠자리 알! 이러한 내용이 TV에 방영되면서 사람들은 우담바라가 풀잠자리 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부터 “우담바라? 풀잠자리알?” 또는 “우담바라야? 풀잠자리 알이야?”와 같은 제목으로 신문에 실린다.

사람들은 우담바라로 불리는 것이 사실 풀잠자리 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잘못을 수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풀잠자리 알의 다른 이름이 우담바라로 생각하며, 풀잠자리 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행운을 가져 올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의 믿음은 어찌나 강한지 우담바라는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처음 우담바라가 등장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축소되었다는 정도. 그러니까 처음 이 꽃이 등장했을 때 국가 전체에 상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면, 이제 이것이 거의 모든 곳에 발견되면서 그 꽃이 핀 절, 학교, 회사, 집으로 한정되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담바라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과학적인 것보다는 신비롭게 여겨지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여전히 과학으로 밝혀낼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는 웬만해서는 처음에 했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합리화하려고 애쓴다. 우리의 믿음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