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규열<br /><br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초기엔 `상아탑(tour d`ivoire)`이었다. 속세에 물들지 않고 현실과는 거리를 두면서 자연을 벗삼으며 예술을 사랑하고 지적이며 심미적인 안목과 능력을 기르는 장소로서 대학은 많은 지성인과 지도자들을 길러 내었다. 그리고는 근대를 맞은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우골탑(牛骨塔)`이 되었다. 사회에서 성공에 이르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대학에 자녀를 보내려면 시골의 부모는 소를 팔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시절, 대학은 기회의 통로이자 명성을 위한 간판이었다. 그러면서 대학의 청년문화는 일정부분 사회의 엘리트들을 길러내는 문화적 표징으로서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변되곤 하였다. 이제 곧 사회로 진출하여 여러 분야에서 리더로서 자리를 잡을 젊은 세대는 우리 사회의 문화도 맨 앞에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80%가 넘게 대학에 간다고 한다. 오늘 우리 대학의 모습은 어떠한가. 21세기 우리 대학생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대학은 어떤 사람을 길러야 하는가. 미국의 사회학자인 앤드루 델방코(Andrew Delbanco)는 대학의 본질이 `젊은이들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 데에 있다`고 하였다. 어찌 보면 그의 목소리는 대학에 가는 개인적이며 현실적인 필요를 도외시한 생각처럼 들린다.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이제 곧 성인이 될 즈음해서 가게 되는 대학에서 자신의 실력을 닦아 그 이후의 삶이 안정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 사회와 이웃에 대한 태도와 역할이라는 것이다. 성인으로 접어들면서 개인적인 흥미와 관심 분야가 생기고 정치적 안목과 세계관이 자라나며 사랑과 우정의 깊이가 더해가고 스스로 헤쳐 갈 지평이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할 무렵, 사람의 개성이 본격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럴 즈음에 우리는 개인의 생존을 위한 기술에만 집중하기 보다 보다 폭넓은 인성과 특히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에서의 담론은 할 수 있는 대로 제한없이 자유롭게 확장적으로 진행될수록 좋다. `표현의 자유`가 가능한 대로 허용되어 젊은 지성들이 마음껏 받아들이고 충분히 고뇌하며 독립적으로 결정해 가는 너른 지평이 바로 대학의 광장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물건의 질이 좋지 않으면 결국 잘 팔리지 않아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론의 지평에도 `생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이 있다고 한다. 던져진 생각과 개진된 의견이 공동의 선에 부합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의 존재 이유는 지성적 문화를 기르는데 있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더 많이 알아내고 인문학적으로 더욱 폭넓게 이해하며 그리고 이를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는 공부를 심도있게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 개인의 성장이 담보될 뿐 아니라 총체적으로 소양깊고 책임있는 인성들이 길러지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만약 그저 취업이나 돕고 기술이나 가르치려 했다면 대학은 그 들이는 비용에 비하여 매우 비효율적인 투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에서 받은 교육이 대학 이후의 삶에서 진정으로 그 진가를 발휘하게 하려면 우리는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나누고 함께 배워야 할 것인지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학생들에게 일방적인 주입과 전달은 이미 그 힘을 잃었다. 다음 세대 대학생들과 이전 세대 교수들이 공유하고 상생하며 더불어 배우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진정한 시민역량이 길러지는 환경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대학의 강의실이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만남과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학이 세상을 바꾸어 가는 일의 중심에 서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