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지난 주 초에 정말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 `1987`을 보았다. 필자는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관을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필자가 이 영화를 보러 간 것은 대학에 들어간 뒤 선배들로부터 항상 들었던 `1987년 6월 항쟁`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1987년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영화 `1987`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서울대 언어과 84학번 학생 박종철의 고문치사 사건의 추이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1월 14일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다가 질식했다. 경찰은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이었던 최환 검사에게 박종철 시신을 화장할 수 있도록 지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최 검사는 부검을 고집하며 버텼고, 이 사건은 대검찰청 이홍규 공안4과장의 제보로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에 의해 처음으로 보도 되었다.

필자가 영화에서 받은 가장 큰 인상은 1987년 6월 이전의 대한민국은 국가에 의한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박종철의 고문치사는 당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던 국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최환 검사는 “국가가 국민을 고문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부검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1987년은 국가 폭력에 대한 국민의 인내가 임계치에 도달했던 때였던 것이다.

사실 한국의 현대사는 국가권력이 경찰이나 군대를 동원하여 폭력으로 국민을 억압해온 역사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군대를 이용하여 국민들의 시위를 진압하였으며, 전두환 대통령도 5·18 광주항쟁 때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군대를 투입했다가 대량 학살을 하기도 했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공식출범 하자 이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대 데모를 막기 위해서 학교에 전투경찰이 상주하였다.

전두환 대통령 시대의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것은 단연 `백골단`이 아닐까 한다.`1987` 영화를 보면 흰색 헬멧을 쓰고 청바지를 입고 곤봉을 든 사람들이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이 백골단이다. 이들은 학내 시위자들과 시위 군중들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경찰관들로서 대부분 무술 유단자와 특전사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7년 6·10 항쟁으로 전두환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의 쿠데타 동료였던 노태우 장군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국가의 폭력은 정도만 약해졌지 여전했다. 1989년 3월 필자가 처음으로 등교하자 대학 교문 앞에는 전경들이 학생들의 학생증을 일일이 검사했다. 그 해 4월인지 5월인지에 필자는 백골단의 무서움을 몸으로 경험하기도 했다. 필자가 선배들과 학교 근처의 음식점에서 과모임을 하고 거리로 나왔을 때, 사복경찰들이 곤봉을 들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우리는 공포에 질려서 건물 구석으로 도망쳤는데, 사복경찰은 거기까지 따라와서 곤봉을 휘둘렀다. 나중에 들으니 학생 몇 명이 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져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의 `인권`이 많이 향상되었고 국민에 대한 국가 폭력은 현저하게 줄었다.

필자는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한 기사에는 `남영동 대공 분실` `백골단` 그리고 `최루탄`에 대해서 해설하는 것도 있다.

노 대통령 덕분에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이런 것들은 학습해야 하는 과거의 사건이 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무엇이었는지는 세대에 따라서 그리고 정치 집단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해를 기점으로 국가 폭력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지난 해 우리가 촛불집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공권력이 국민에 대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