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최보(1454~1504)는 `금남집, 동국통감론`에서 고구려 제9대 임금인 고국천왕이 시행한 진대법(賑貸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제 고구려의 왕이 굶주린 백성들을 보고 그 의식을 지급하고, 나아가 온 나라의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염려해 마침내 진대법을 시행했으니 그는 이른바 백성을 구휼하는 정치에 대해 아는 자일 것이다.`

이 진대법이란 보릿고개 계절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가을에 추수한 뒤에 돌려받는 고대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양식이 없어 굶어 죽거나 몸을 팔아 남의 종으로 전락하는 일을 막는 효과도 컸다. 그래서 그는 고국천왕이 정치의 요체를 잘 안다고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반면 제나라 환공이 외유할 때, 한 노인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옷과 음식을 내려줬는데, 노인은 온 나라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의식을 내려주라고 부탁하자 환공은 `과인의 창고 정도로 어찌 온 나라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두루 혜택을 베풀겠는가!`라고 말한 일화에 대해 `이는 어진 마음은 있지만 정치를 하는 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또한 춘추시대의 명재상이었던 자산이 정나라 재상의 신분이면서 그 수레와 가마를 가지고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에서 백성들을 건네줬던 일화에 대해 `이는 작은 은혜를 행했지만 정치를 하는 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다`라고 낮게 평했다.

최보 선생이 강조하는 내용은 임금이나 재상이 반드시 사람마다 물건을 내려주고 사람마다 건네주느라 날이 부족할 정도인데도, 백성들에게 미치는 은혜는 도리어 두루 고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헐벗고 굶주린 노인에게 옷과 음식을 내려준 제나라 환공이나 겨울철에 자신의 수레를 동원해 백성들을 건네준 정자산의 행위에 대해서는 진정한 정치가 아니라고 보았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들 정도의 신분이라면 한두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그런 방식보다는 온 백성들의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다.

맹자에 나오는 고사로 양나라 혜왕이 희생으로 쓰일 소가 벌벌 떨며 끌려가는 것을 보고는 불쌍한 마음에 양으로 대체하라고 명했다. 얼핏 보면 참으로 어진 마음이다. 그러나 대신 죽어간 양은 무슨 죄인가. 제물로 쓰이는 동물들이 불쌍하다면 희생을 바치는 제도 자체를 없애야 했던 것이다.

리더나 위정자가 눈앞의 곤궁함을 보고 자잘하게 은혜를 베풀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생기는 폐단이 만만치 않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당장 한쪽에 이익을 주면, 다른 쪽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어머니가 우산장수 아들이 불쌍하다고 비 오기를 기도하면 소금장수 아들은 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이런 현상은 인기와 여론에 민감한 오늘날의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갑을관계, 비정규직 문제, 저출산 대책, 안전 불감증으로 일어나는 각종 재해 등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이슈만 터지면 여야 없이 우르르 몰려들어 타 정당을 비방하며 대안 없이 문제점만 지적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특히 약자를 배려한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가 전체적인 차원의 미래지향적 접근보다는 표를 의식해 지엽적인 정책을 내놓는 경우도 다반사다. 인기 위주의 졸속적인 일회성 대책은 장기적으로 볼 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리더나 위정자라면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사고를 가지고 정책을 수립하거나 대책을 세우면 대신 피해를 입는 다른 쪽의 사람이나 조직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무술년의 새해가 밝았다. 후진적인 막장정치가 일소되고 국민 모두가 바라는 올바른 정치행위가 이뤄져 국태민안의 한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