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경제학` 유성운·김주영 지음·21세기북스 펴냄실용 경제경영·1만8천원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 출간됐다. 중앙일보 유성운 기자가 글을 쓰고, 다음소프트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하는 김주영 씨가 그래픽 등을 담당한 `걸그룹 경제학`이 바로 그것.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밀착형 경제학 레시피`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걸그룹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현상을 경제학으로 풀어내 주목받고 있다.

즉물적 흥미를 유발하는 `걸그룹`과 어렵고 딱딱한 학문으로 인식되는 `경제학`을 결합시킨다는 것은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멀고 먼 거리를 좁혀가는 것 이상으로 쉽지 않은 것일 터.

그러나, 유성운과 김주영은 그들 나름의 잣대와 `세상 보기 방식`으로 이 어려움을 정면에서 돌파해냈다.

`소녀시대`의 멤버 태연이 지닌 가창력을 `비교우의의 법칙` 아래서 분석하고, 한국 군인들 모두의 연인이었던 `스텔라`의 인기를 `대체재와 보완재`를 가져와 해석하며, 매몰비용의 함정과 오류을 통해 `레인보우`의 명멸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걸그룹을 소재로 한 이전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돌올함이다.

`걸그룹 경제학`은 이외에도 아이유가 연기자로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 `AOA`가 설현이라는 멤버에 `몰빵`하는 이유, `트와이스`의 쯔위를 통해 깨닫게 되는 동아시아의 역사 문제, `걸그룹 삼촌팬`의 정체성과 한계까지를 다루고 있다.

가벼운 문제 제기로 시작해 세상과 사물의 본질에 육박해 들어가는 유성운 기자의 문장은 흥미로운 동시에 의미 또한 만만치 않다.

이메일을 통해 `걸그룹 경제학`의 저자인 유성운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재기발랄한 문장처럼 성격 또한 시원시원한 그는 흔쾌히 제의에 응했다. 아래는 유성운과 주고 받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걸그룹을 통해 생활과 밀착된 경제학을 풀어 설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출간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소녀시대의 팬이다. 이들의 데뷔 10주년에 맞춰 각종 정보를 인포그래픽(Infographics·정보, 데이터, 지식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걸그룹 혹은, 아이돌이라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산업의 대표 주자고 자본주의의 총아다. 이것만큼 경제학 법칙에 흥미롭게 맞물린 분야도 없을 것 같았다.”

-자료 조사와 데이터 분석 등에 시간이 적지 않게 소요됐을 듯하다. 기자생활과 병행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책을 준비하는 동안 정치부에서 일했다. 하필 이 기간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19대 대선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새벽 3~4시쯤 일어나 글을 쓰곤 했다. 그나마 데이터 작업은 공저자인 다음소프트 김주영 과장이 맡아줘 겨우겨우 해낼 수 있었다.”

-걸그룹을 `팬`이 아닌 `분석과 연구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작업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소녀시대는 단순한 아이돌이 아니다. 이들은 2세대 걸그룹 시대를 열었고, 일본·동남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진출한 개척가다. 한국 대중문화에서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출현 이후 가장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는데, 해외 문화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들이 더 상위에 있다고 본다.

조용필, 서태지 등을 최고의 가수라고 하지만 해외에서 그들을 알까? 물론 한국의 국력 신장이나 인터넷 환경 등도 영향을 줬지만 비슷한 환경과 국력을 가진 다른 나라에서 이런 영향력 있는 가수들을 보유한 것은 미국과 영국 정도가 전부다.

일본의 J-POP(제이 팝)도 이 정도의 위상은 아니다. 이젠 해외에서도 국내 걸그룹 오디션에 도전하고 있다. 걸그룹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먹물층`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인정을 받고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걸그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미성년 소녀를 착취한다거나, 보편적일 수 없는 환상을 유포하고 있다거나, 여성의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은 어떻게 보나?

“보이그룹도 있다. 그렇기에 걸그룹만을 여성의 상품화라고 보는 건 편향된 시각인 것 같다. 노래와 춤을 잘 하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주목받았던 건 인류 역사의 보편적 현상이 아닌가. 서울대에 입학하는 것보다 힘든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청춘을 던지는 걸그룹의 패기를 칭찬해주고 싶다.”

-걸그룹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은 뭔가?

“보고 있으면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 이건 대단한 힘이다. 세상에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 슬픈 이야기지만 내가 `기자`라며 사람들에게 접근했을 때 행복한 표정을 짓는 이들은 거의 없다. 또 하나를 꼽자면 여학생들에게 공부와 운동 외에 `제3의 길`을 열어줬다. 걸그룹이 사회적 다양성을 확대하고 있다고 본다.”

▲ `소녀시대`와 함께 한 유성운 씨.<br /><br />사진=이종원
▲ `소녀시대`와 함께 한 유성운 씨. 사진=이종원

-연예인 취재는 쉽지 않다. 책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며 어려움은 없었는지.

“책을 기획할 때는 사회부에서 근무했고, 취재에 들어갔을 때는 정치부였다. 연예기획사 실장들에게 전화해 `안녕하세요. OO일보 정치부(혹은, 사회부) OOO 기자라고 합니다`라고 소개하면 다들 겁을 먹었다. `우리 애들이 무슨 사고라도 저지른 게 아닐까`라고 지레 걱정한 것이다. 만나주려고 하지 않고 자료도 잘 안 줬다. 아무리 취지를 설명해도 무언가 비판적인 기사를 쓸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취재였다.(웃음)”

-다양한 측면에서 걸그룹을 관찰했다. 앞으로도 한국의 걸그룹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시장이 작다는 것이 경쟁력이다. 일본이나 중국은 인구가 많기에 대부분의 가수가 내수용이다.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일본의 걸그룹들이 해외에서 주목받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지나치게 일본 시장에만 매몰돼 있었다. 반면 우리는 내수시장이 작아 시작부터 해외에서 어필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외국인들이 봐도 예쁘고 귀엽고 군무 또한 화려하다. 베네수엘라가 미스 유니버스나 미스 월드 등의 미인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듯 한국의 걸그룹도 그런 단계에 진입해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이것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달라`는 부탁을 한다면.

“다양한 빅데이터 작업으로 정성을 다해 그래픽을 만들었다. 그래픽만 봐도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책에 담긴 문장도 선입견 없이 꼼꼼하게 읽어줬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가벼운 질문이다. 당신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그룹은?

“소녀시대와 트와이스다. 소녀시대가 2세대 걸그룹 시대를 열었고, 군웅할거(群雄割據)의 10년 동안 왕좌를 유지한 건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이제 트와이스가 왕좌에 앉은 셈인데 비교불가의 그 위상이 얼마나 유지될지 궁금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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