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 황장산을 다녀왔다. 마침 눈이 와서 나무마다 눈꽃이 만발했다. 산에 가면 뒷사람이 쫓아오든 말든 무조건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사람이야 가든 말든 뒤에서 느긋하게 걷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빨리 갈 만하면 빨리 가고 늦게 갈 만하면 늦게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야 가히 함께 산을 오를 만하다.
▲ 상주 황장산을 다녀왔다. 마침 눈이 와서 나무마다 눈꽃이 만발했다. 산에 가면 뒷사람이 쫓아오든 말든 무조건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사람이야 가든 말든 뒤에서 느긋하게 걷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빨리 갈 만하면 빨리 가고 늦게 갈 만하면 늦게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야 가히 함께 산을 오를 만하다.

△공손추의 물음

공손추(公孫丑)는 맹자의 수제자로 만장(萬章)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제자라 한다. 맹자가 각 나라를 찾아 인의(仁義)를 호소하며 유세(遊說)를 펼쳤으나 그의 말이 어디에서도 쓰임을 받지 못하자 물러나 경전편찬과 저술 작업에 몰두한다. 이때 맹자의 최측근에 있었던 제자가 공손추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에서 만장과 공손추의 문답이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공손추는 맹자에게 관중과 안영의 업적에 대해 물었으며, 수준 높은 질문을 통해 부동심(不動心)과 호연지기(浩然之氣) 등과 같은 중요한 사상을 이끌어낸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믿기 어렵다. 왜냐하면 공손추의 질문은 수준이 높기는커녕 `초딩`이나 `중2병` 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던진 첫 질문은 겨우 “스승님께서 만일 제나라에서 요직을 담당하신다면 관중과 안자의 공적을 다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였다. 이것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하고 바다거북이하고 둘이서 헤엄치기 시합하몬 누가 이길 것 같노?”(영화 `친구` 중 중호의 대사)와 같은 수준이다. 이런 공손추가 고평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맹자의 속마음

어찌되었든 공손추의 이런 유치한 물음에도 맹자는 찰떡같이 대답을 한다. 참 좋은 스승이 아닐 수 없다. 관중은 자신이 모시는 군주를 패자로 만들었고, 안자는 자신의 군주 이름을 세상에 크게 떨쳤지만, 맹자는 그들보다 자신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말한다.

도대체 맹자의 능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맹자는 이 질문을 피하고 싶었고 최대한 자신을 낮추려고 했지만, 공손추의 집요한 질문공세와 교묘한 아첨 앞에서 실언을 하고야 만다. 자신은 마음을 동요하지 않고(不動心),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크고 넓은 기운(浩然之氣)을 잘 키우며, 말에 대해 잘 안다(知言)는 등 스스로를 한껏 추켜세웠다.

이런 맹자의 자찬에 공손추는 `아싸 걸려 들었어`하는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되묻는다. “재아, 자공은 말하기를 잘하였고, 염우, 민자, 안연은 덕행을 잘하였는데, 공자께서는 이것을 겸하셨으되 말씀하기시를, `나는 말하기(辭令)에 있어서는 능하지 않다`라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시겠습니다.”

말하는 것과 덕행이 뛰어나다면 공자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냐는 공손추의 되물음은 존경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비꼬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제서야 맹자는 화들짝 놀라 “성인은 공자께서도 자처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 말인가?”라며 얼버무린다. 이렇게 버린 몸, 이제 맹자는 자신의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그려 내기 시작한다.

△이윤과 백이

맹자는 성인이 가져야 할 덕목을 부분적으로 갖추었던 자공, 자유, 자장이나 성인된 덕목을 미약하게 가지고 있었던 염우, 민자, 안연 등과 같은 공자의 제자들 따위와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맹자는 자신과 최종적인 비교의 대상으로 이윤(伊尹), 백이(伯夷), 공자를 지목하고 있다.

중국의 고대사는 하(夏), 상(商), 주(周)로 이어지는데 이윤은 하나라 말기의 사람이며 백이는 이윤보다 500년 이상 늦은 상나라 말기의 사람이다. 백이는 유교에서 말하는 청렴지사의 표본이며, 이윤은 명재상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윤과 백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이윤은 상나라의 개국공신이다. 사기에 따르면 그는 솥과 도마를 짊어지고 탕왕을 찾아와 나라 다스리는 일을 요리하는 것에 비교하여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되어 있다. 맹자는 이런 말은 결코 믿지 않는다(만장장구 9장). 맹자에 따르면 이윤은 오히려 탕왕이 먼저 찾아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벼슬길로 나아갔으며, 하나라의 폭군 걸(桀)을 쳐서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

백이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의 그 백이다. 백이는 형이고 숙제는 동생인데, 이들은 왜 굶어 죽은 걸까? 이들은 원래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였는데, 형은 동생을 위해서 동생은 형을 위해서 왕위를 사양하다 결국 둘 다 나라를 떠났다. 참 우애 깊고 청렴한 형제다. 이들이 살던 때는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가 폭정을 행해 나라가 도탄에 빠져 있을 때다. 참다못한 무왕은 주왕을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를 지켜본 백이숙제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왕을 죽일 수가 있냐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아사했던 것이다.

이런 백이와 이윤에 대한 맹자의 평가는 좀 모질다. 백이는 섬길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부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았고, 이윤은 나라가 잘 다스려질 때도 또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도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그런 점에서 백이는 속이 좁은 사람이며, 이윤은 나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맹자는 평한다.

△장그래: 자연스럽게

공자에 대한 맹자의 평가는 어땠을까? 맹자가 보기에 공자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고 머무를 만하면 머무르고, 떠날 만하면 떠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사람이 만들어진 이래로 공자와 같이 훌륭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오직 공자를 닮고자 할 뿐이다. 맹자가 공자의 훌륭한 제자, 뛰어난 재상, 청렴지사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맹자는 공자와 같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상하다.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떠날 만하면 떠나는 사람” 도대체 이런 공자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보면 공자는 그저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에 불과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어떤 행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옳고 그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공자는 그 상황과 전례를 살피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옳은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곧 그의 행동이 예법이며 인륜이며 인간의 최종적인 본보기였다. 이런 경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앎을 습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체화하여 실천하여야 한다. 그러할 때 마음가는대로 행하여도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欲不踰矩).

이러한 공자의 현실적 버전이 `미생`의 장그래가 아닐까? 오상식 과장은 장그래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 이 말은 짧으면서도 무척 강렬하며,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장그래는 큰일을 하면서도 야단스럽게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력하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진짜 노력이란 어떤 일을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장그래는 억지를 부리거나 무리를 하지 않는다. 그는 일이 지닌 속성과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알며, 이를 토대로 일이 흘러가는 방향과 자신의 바람을 조율할 줄 안다.

올해는 유난히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내 이름을 걸고 많은 일을 하고 싶은데 그 중 하나가 논문과 책을 쓰는 일이다. 이렇게 욕심이 많을 때일수록 욕심을 내세우면 안 된다. 나는 올해 장그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