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빠르다. 정말 빠르다. 세월은 역시 빠르다. 국정농단 최순실 사태로 탄핵과 촛불집회로 막을 내렸던 2016년이 엊그제 같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고, 5·9 대선을 지나 새로운 정부가 구성된 것이 아까 같다. 그런데 연말이 코앞이다. 그 사이 뭘 하고 살았나, 하여 달력을 뒤적여보니 깨알 같은 글자로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참 별일도 많구나, 싶다. 주어진 책무를 그저 다했을 뿐인데, 365일이 다해가고 있는 것이다.

허락된다면 내가 살아온 2017년 기록을 낱낱이 사진기로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장삼이사의 허망하고 남루(褸)한 일상이어서 그렇지만 다들 분망(奔忙)하게 세상과 마주하고 있으리라.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노숙생활을 접고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한 열 서너 분과 함께 했던 시간이 기억에 새롭다. 한 주에 한 번 1시간 반 정도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분들. 그들이 흉중에 가지고 있는 사연들이 아직도 궁금하다.

세 번의 자살시도에도 끝내 불귀(不歸)의 객이 되지 못해 이승을 배회하고 있는 외로운 70대 남성. 아무리 죽으려 해도 죽어지지 않았던 육신과 구원의 손길로 생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그. 그는 생의 끄트머리에서 처절한 고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는 게 아무 재미가 없어요.” “재미로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를 찾으셔야죠.” “뭘 해도 그저 덤덤해요….”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냉기 도는 썰렁한 집. 혼자만의 밥과 잠과 일상에서 오는 반복적인 기시감. 어제도 오늘도, 그리하여 내일도 되풀이되고야 말 것 같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무의미한 나날들. 거기서 발원하는 무료함과 무력감. 노숙생활을 접고 시작한 갱생(生)의 일상을 보조하는 사업으로 만나게 된 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크고 작은 곡절(曲折)로 점철돼 있었다. 지난 12월 13일 졸업을 하면서 못내 서운했을 그이들.

“내년에는 이 사업이 없어져서 저희도 많이 아쉬워요.”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던 담당자 역시 아쉬움을 피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이는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고 사는 중년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말씀들을 안 하시고 천장만 바라보셨는데, 어느 때부턴가 말문이 트여 서로 말씀을 다투세요. 참 외로운 분들입니다. 내년 예산편성에 이 사업이 빠져있다고 합니다. 저도 꼭 살렸으면 하는데, 그게 어디 제 맘대로 되나요?!”

대구시가 지원한 `희망 나눔의 집` 사업은 고립 분산적으로 힘들게 살아온 이웃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육신은 물론이려니와 정신마저도 피폐하고 지쳐버린 60~80대 이웃들에게 삶을 되살려주려는 의미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인문학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거점국립대학에 몸담고 있는 나는 잠시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고단한 행장(行狀)을 엿본 셈이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고자 했다. 이야기 중에 말을 섞는 분이 있으면 가능하면 그 말을 끝까지 경청하려 했다. 다수 참가자는 내가 내건 `노자와 인간`이란 주제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하되 다른 분들은 시비조로 이야기에 제동을 걸거나 딴소리로 김을 빼기도 했다. 약속된 일정이 끝나고 소회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자 다들 서운함과 아쉬움을 말하는 것이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하게 돼서 뜻 있고 유쾌했습니다. 이런 사업에는 대구시가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내년에 지자체 선거도 있다는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모쪼록 여러분의 앞날에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빌겠습니다.”

서로 만나 안부 묻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얼굴 붉히지 않고 호형호제 하면서 지내왔던 그분들의 뼈저린 외로움과 기나긴 겨울밤을 생각한다. 탈세와 불법증여와 상속으로 탈루되는 돈이 적지 않다는데, 정작 온전히 쓰이는 세금은 어디로 갔나, 생각하는 세모(歲暮)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