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각봉에서 대둔산은 딱 한 번 자신을 보여주었다. 산을 둘러싼 겨울비도 안개도 잠시 어딘가로 물러나고 있다. 사라진 것들은 채 삼십 분도 되지 않아 다시 빼곡히 몰려든다. 이들은 어디로 갔다가 어디에서 몰려오는 것인가, 이들은 어디에서 생겨나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가. 이것들은 변함없이 여기 있는데 내 마음이 모양을 바꾸는 것인가. 그런 의문들 속에서 하루도 한해도 저물어 갔다.
▲ 서각봉에서 대둔산은 딱 한 번 자신을 보여주었다. 산을 둘러싼 겨울비도 안개도 잠시 어딘가로 물러나고 있다. 사라진 것들은 채 삼십 분도 되지 않아 다시 빼곡히 몰려든다. 이들은 어디로 갔다가 어디에서 몰려오는 것인가, 이들은 어디에서 생겨나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가. 이것들은 변함없이 여기 있는데 내 마음이 모양을 바꾸는 것인가. 그런 의문들 속에서 하루도 한해도 저물어 갔다.

△한 해를 돌아보며

올해는 특히 많은 일이 있었어요. 가장 이상한 일을 꼽으라면 자전거와 관계된 일이예요. 처음으로 자전거를 샀고, 자전거를 타다가 늑골이 두 대나 부러졌는데, 그 자전거를 또 누가 훔쳐 가버렸지 뭐예요. 참 이런 일이 다 있네요. 늑골이 부러진 덕에 한두 달 운동을 못했어요. 운동을 안 하면 무조건 살이 찌는 체질이라 엄청 살이 쪘네요. 아버지는 살과 게으름을 동일시하셔서 늘 모진 말씀을 하시는데 집에 갈 일이 두렵네요.

가장 후회하는 일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일예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세 곳이 있었는데 여기가 더 나을 것 같아서 갔다가 또 저기가 나을 것 같아서 저기도 한 번 갔다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게 실망만 안긴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내년에는 꼭 중심을 잡고 살려고 해요.

그래도 올해는 안 좋은 일보다 좋았던 일이 더 많았어요.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거든요. 제가 가진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정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인문학은 돈도 안 되고,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는 일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저 스스로 회의가 들 때가 많았는데 이 강의를 통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인문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예요.

또 하나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일입니다. 좋은 지면을 주신 `경북매일`에 이렇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매주 글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녜요. 몇 번이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꾹 참아내고 있어요. 여러분께 좋은 글로 찾아뵙질 못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어쩌면 그래서 못 그만두는지도 모르겠군요. 정말 좋은 글로 여러분들께 다가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거든요.

이 칼럼을 쓰면서 좋았던 건 거의 매주 여행을 간다는 겁니다. 매주 갈 때도 있지만, 한 주에 두 번씩 갈 때도 있어요. 그런데 여행이라는 게 참 오묘해서 어떤 여행은 금방 쓸거리가 있어서 글이 쏟아지는데 어떤 여행은 아무리 오래 두어도 못 쓰게 되는 것들도 있어요. 더군다나 정말 좋았는데도 쓸 말이 없는 그런 여행도 있어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어찌 되었던 이 칼럼 덕에 생전 처음 낚시도 해봤고요, 경상북도 구석구석을 다녀봤고요, 전국 곳곳의 축제도 다녔어요. 무엇보다 이 칼럼 덕택에 등산이라는 걸 처음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 칼럼이 없었다면 아마 제가 산을 타는 일은 없었을 테고, 그랬다면 아마 제가 산을 이렇게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거예요.

글 때문에 등산을 하게 되었고, 등산 덕분에 운동이 이렇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글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삶의 표면에서 삶의 심연으로, 다시 삶의 심연에서 표면으로 저를 옮겨 놓아요. 그래서 여지껏 운동이라는 걸 모르고 살다가 지금은 온갖 운동을 다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지나치는 느낌들, 생각들…. 글쓰기는 이런 것들을 더욱 단단히 부여잡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육체적 힘듦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제 머릿속을 떠도는 사유의 정체 역시도 알 수 있게 되어요. 글은 어둠 속의 빛과 같아서 사물에 형상을 주고, 색을 주어 사물이나 대상을 보다 분명하고 선명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겨울비 속 겨울안개

어찌되었건 전 이 칼럼을 위해 오랜만에 산행을 나서게 되었어요. 마지막 산행이 9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7월 26일 마이산 이후 처음이더군요. 거의 반 년 만에 산에 온 셈이네요.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겨울비, 아니 겨울폭우처럼 쏟아졌어요. 저 비를 맞고 산을 오를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어요. 시작하는 초입은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가팔랐어요. 준비가 늦어 제일 늦게 출발한데다가 간만에 오르는 산이라 좀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후미대장님은 묵묵히 저를 기다려주셨지만, 왜 이렇게 늦냐, 그만 포기하고 내려가라, 이런 말을 할 것 같아 겁이 났어요.

이를 악물고 걷긴 했지만, 벌써부터 장딴지며 허벅지며, 곳곳의 근육가 인대가 느껴졌고, 그 느낌들은 모두 통각이었어요. 이럴 때 어김없이 하게 되는 생각, 왜 왔지? 대둔산은 정말 아름다운 산으로 알고 있는데 겨울비와 함께 몰려온 겨울안개는 어떤 전망도 허락하지 않았어요. 장갑과 바지는 이미 축축했고, 등산화도 젖어가고 있었어요. 이럴 때 어김없이 찾아드는 생각, 왜 왔지? 밥을 먹을 곳이 없어서 서서 먹어야 했고, 아이젠을 신었더니 발은 더 아파 죽을 맛이었어요. 이럴 때 어김없이 찾아드는 생각, 왜 왔지?

비 맞은 중처럼 군시렁거리는 동안 벌써 하산길로 접어들었더군요. 서각봉(826m)에서 암릉으로 내려갈 즈음 앞서가는 일행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어요. 무슨 일일까? 산을 온통 휘감고 있던 비와 안개가 산을 내어주고 있었어요. 운무는 복병을 만난 군대처럼 일시에 퇴각하고 있었고, 우리의 시계는 저 멀리 수락저수지까지 가 닿았어요. 저 구름이며 안개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이렇게 오늘 비는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어딘가에서 피어오른 산안개 사이로 겨울비가 스몄어요. 도대체 산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감당할 수 없는 의문들을 안고 산을 내려왔어요.

이날 산행은 10km밖에 되지 않아 일찍 끝났어요. 시간도 이르고 또 연말이고 해서 뒷풀이를 가게 되었죠. 소주는 평소에 먹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산에만 다녀오면 소주가 당겨요. 몇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술자리 내내 즐거울 수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다른 대답일 수도 있지만 도시와 멀리 떨어진 산일수록, 산이 가파르고 험할수록, 산행하는 사람들을 지나칠 때 반갑게 인사하는 이치와 같은 것 같아요. 이 산을 함께 올랐고 함께 고생하고 있다는 동질감. 일종의 전우애 같은 걸 느끼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산행되세요.”하고 크게 인사를 하게 되는….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함께 산을 오르고 내려온 같은 산악회 사람이라면 그 동질감은 더 크겠죠. 그러니 함께 한 사람들이 좋을 수밖에 없고, 땀을 뺀 뒤라 술은 달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보자면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나 봐요. 겨우 산을 한 번 같이 올랐을 뿐인데도 이렇게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 이것이 인간이 얼마나 단순한지를 증명해주고 있어요.

이 아무것도 아닌 산행, 그로부터 파생된 친밀감과 동질감은 우리를 연대하고 공존하게 만들어요. 이러한 감각을 확장시킬 수는 없을까요. 지구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인간 전체로 말이죠.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정말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는 누구에게든 닥칠 죽음이라는 병을 함께 앓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공존과 연대와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