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교수신문은 한국 교수사회를 대변할 신문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창간을 논의해 한국 지성의 정론지를 표방하며 1992년 4월에 창간됐다. 이 신문은 2001년부터 연말이면 우리나라의 한 해 동안에 일어난 사회상을 특징짓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한 사례로는 2008년에 선정된 호질기의(護疾忌醫)다.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가 통서(通書)에서 마치 병을 숨기듯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꺼리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했다. 당시 교수신문은 `국민들의 비판과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정치권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선정 이유를 전하면서 정치권이 미국 쇠고기 사태와 촛불시위, 글로벌 경기침체의 대응방식이 미흡했다고 비판했다.

2009년 중국과 미국의 전략경제 대화 중에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전국시대 고전의 하나인 `맹자, 진심(盡心)하`의 `산길의 오솔길도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 큰길이 되지만, 뜸하게 이용하지 않으면 풀만 우거진다`라는 대목을 인용해 두 나라 사이의 지속적인 협력과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중국인이 즐겨 쓰는 관용구인 `동주공제(한 배를 타고 같이 강을 건넌다)`와 `봉산개도, 우수가교(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를 인용해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다. 뒤의 것은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는 주로 정치판에서 심심찮게 토사구팽 등과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중국의 사자성어를 인용하곤 한다. 최근에는 경영인들도 함축적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유용한 사자성어를 즐겨 쓰고 있다. 몇 년 전 한 대기업의 총수는 주력사업의 중국 진출을 독려하기 위해 `파부침주`라는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상당히 극적인 사자성어를 언급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사자성어는 대부분이 송나라 이전으로 춘추전국시대 550여 년을 거치면서 가장 많이 형성된 걸로 본다.

이러한 사자성어는 한자문화권의 특별한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다의어인 한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 글자의 뜻이 다양하게 축적되는 것과 동시에 의미도 다양하게 변해 하나의 문화코드로 정착했다. 국가 간의 회의나 비즈니스 협상에서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코드인 사자성어를 즐겨 인용하는 것도 거기에 담긴 심오한 의미에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태어 전달함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술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국정농단사건이 발생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가결되자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니 물의 힘으로 배를 띄우지만 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는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됐다. 올해 선정된 사자성어는 수나라의 불교 삼론종(三論宗)을 집대성한 가상대사 길장(549~623)의 저서인 `삼론현의`에 실려 있는 교리인 파사현정(破邪顯正)이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더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패와 비리로 썩은 사회 곳곳의 환부를 도려낼 힘과 용기는 결국 시민들의 촛불에서 나왔으니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올바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파사현정이란 사자성어는 2012년에도 대통령을 비롯해 가진 자들의 사익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익실현과 정의사회를 구현하도록 하는 바람으로 선정됐었다. 당시 MB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새로 들어설 박근혜정부의 출범에 대한 기대감과 여망에서 선정되었지만, 되레 박근혜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바뀌어 다시 출현한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단어가 다시 선정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국민들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