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방주 쉐프가 어르신들에게 음식과 레시피에 대해 설명 중이다. 나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소꿉장난 하는 아이 때처럼 흥이 났는데 술 없이도 취해버렸다.
▲ 송방주 쉐프가 어르신들에게 음식과 레시피에 대해 설명 중이다. 나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소꿉장난 하는 아이 때처럼 흥이 났는데 술 없이도 취해버렸다.

“인문학자와 쉐프가 함께 만드는 음식 이야기.”

이것은 요즘 제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의 제목이예요. 오전에는 시, 소설, 그림, 영화 등에 나오는 음식에 대해 배우고, 오후에는 요리사를 초빙해서 음식을 만들어요. 지난주엔 백석의 시에 나오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르신들은 처음에 시를 보시고는 이게 무슨 시냐고 하셨는데 시를 몇 번 읽고 나서는 참 좋은 시라고 말씀해주셔서 저도 덩달아 좋았어요.

백석의 시에는 음식과 놀이가 많이 나와요. 그래서 어르신들께 어렸을 때 했던 놀이에 대해서 여쭸더니 공기놀이, 땅따먹기, 오자미, 고무줄, 집짓기, 구슬치기, 떼기, 비석치기, 수건돌리기…. 저도 했던 그런 놀이였어요. 그런데 한 어르신이 당신은 어렸을 때 사촌들과 목침을 던지며 놀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참 과격하게도 놀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명절에 올리는 특이한 음식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다들 신식이 되어놔서 제사 음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 중에 한 분이 경상북도에서는 돔베고기(상어고기를 두툼하게 썬 것)를 올린다고 하더군요. 그 참 신기하죠.

하이라이트는 어렸을 때 먹은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한 할아버지는 장마철에 동네 개울에서 호박이 떠 내려와 이것을 집으로 가져갔다는군요. 어머니가 호박에 멥쌀가루, 팥, 넝쿨콩, 찹쌀, 새알심을 넣은 호박범벅을 해주셨다고 해요. 그 호박범벅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찐쌀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해주신 할머니도 계셨어요. 봄에 덜 여문 벼를 쪄서 말린 후 찧은 쌀이라고 해요. 아마 보릿고개를 넘기고 처음 먹는 쌀이라 특히 기억에 남았나 봐요. 또 다른 분은 쑥범벅(?)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시더군요. 부드러운 겨와 새쑥과 콩고물을 섞은 떡이라고 하는데 개떡도 아니고 뭐 여튼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라 재미있었어요.

△삼겹살과 찜닭의 기원

점심을 먹고 나서는 요리사를 초빙해서 로즈마리 제육볶음, 간장유자찜닭을 만들었어요. 저희는 요리를 만들기 전에 닭, 돼지고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마치 찜닭이 우리나라에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 같지만 실은 알고 보면 1970년대 안동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음식이라고 해요. 실제로 안동에 사셨던 할머니가 이를 증언해주셨어요. 삼겹살 역시 그리 멀지 않아요. 치킨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삼겹살, 찜닭, 불고기 이런 것들을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보면 너무 분명해요. 이런 것을 음식으로 사용하려면 그만큼 많은 돼지, 닭, 소를 키워야 해요.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각 가정마다 소규모로 가축을 길렀어요. 그래서 잔치, 제사, 결혼 이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육류를 먹을 수 있었어요.

음식은 물질이어서 물질적 기반이 없으면 만들 수 없어요. 김치만 해도 배추의 원산지는 중국인데다가 배추만큼이나 주원료라 할 수 있는 고추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이고 기록에 따르면 1천800년대에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하는군요.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유의 음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과연 고유한 것인가라는 건 재론의 여지가 있어요. 전통은 말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바뀌었어요. 문화란 그렇게 섞이고 변화하는 것에 핵심이 있어요. 그러니 고유한 우리 것을 찾고, 거기에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덧붙이려면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드디어 요리시간이 되었어요. 로즈마리, 정향, 월계수, 바질 같은 다양한 향신료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그 중에서도 정향은 못처럼 생긴 향신료였는데 양파나 고기에 꽂아서 사용하는데 신기하더군요. 이런 향초다발을 부케가르니(bouquet garni)라고 한다더군요.

저희가 만든 제육볶음은 뻘건 게 아니라 간장으로 조미를 해서 자극적이지 않았어요. 어르신들은 손주들이 좋아할 것 같다며 손주들보다 더 좋아하시더군요. 그런데 저희가 만든 음식은 단맛과 짠맛이 따로 놀았는데 쉐프가 만든 건 맛이 정돈된 느낌이었어요. 왜 우리는 그런 맛이 안 나냐고 쉐프에게 불퉁거렸더니 저희보다 먼저 고기를 재어놓아서 그런가보다고 아주 겸손하게 말해주었어요. 간장유자찜닭은 유자향과 어울려 정말 좋더군요. 그런데 여기에 올리브유를 넣었더니 우와 맛이 완전 달라졌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한 강의인데 제가 더 즐기고 있으니 큰일 났네요.

△어르신들이 `아점`을 먹는 이유

이 강의를 기획할 땐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하나는 어르신들에게 오히려 배우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문화의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어르신들은 식사를 즐기지도 않고, 그저 한 끼를 때우는 것쯤으로 생각하시리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음식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어르신들의 식문화를 개선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니 어쩌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서를 작성했어요.

그런데 막상 어르신들을 만나보니 당신들에게 한 끼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것이었어요. 우선 어르신들은 잘 살거나 못 살거나 돈을 자신한테 쓰는 것을 극도로 아끼고, 불필요한 소비를 최소화하세요. 노인회관에서 1천 원 하는 점심을 먹는데 되도록 많이 먹는다고 해요. 집으로 돌아와 되도록 늦게 저녁을 먹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잠을 들인 후 아침엔 다시 노인회관에 와서는 오전 11시 30분에 주는 `아점`을 먹는 거죠.

강의를 계획할 때만해도 어르신들은 모두 점잖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어르신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정말 딴 판이었어요. 프린터물에 글씨가 작다고 야단을 치시고, 그런 숙제를 언제 내줬냐고 역정을 내시고, 어려워서 못 알아먹겠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시고, 시 좀 읽어보라고 했더니 또 글씨가 작아서 못 읽겠다고 호통을 치시고, 자신이 다음 주에 약속이 있으니 시간을 좀 늦춰 달라고 하시고. 저에게 그런 건 상관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그래서 요리를 할 때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오히려 요리사를 가르치려 들까봐, 그렇게 하면 맛 버린다고 역정을 내실까봐, 설거지를 아무도 안 하고 바쁘다며 휘휘 가버릴까, 무엇보다 서로 요리를 하다가 싸울까봐. 그런데 웬걸! 수십 년씩 밥을 해오셨을 할머니들도 쉐프의 말에 경청했고, 할아버지들은 더 열성적으로 강의를 들었어요. 설거지도 제가 하려고 하니까 선생님은 쉬시라며 다들 앞장서서 서로 도와가며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해 주셨어요.

이제 겨우 두 주 수업을 했는데 벌써 한참 친해진 느낌이예요. 다음 주엔 좀 날이 따뜻해야 할텐데. 그래야 어르신들이 많이 오실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런 게 뭔 인문학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인문이란 생각은 들어요. 저는 어르신에 대해 잘 모르고 어르신들도 요즘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 사이를 연결하여 서로 존재를 확인하는 인문 활동을 통해 그런 자료들을 토대로 새로운 인문`학`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