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돌아보니 올해도 참 부지런히 낚시를 다녔다. 제주, 여수, 가거도, 위도, 군산, 거제도, 통영, 포항, 속초, 곡성, 남원, 순창, 옥천, 금산, 영동 등을 다니며 각종 물고기와 만났다. 제일 행복했던 건 4박5일 동안 쉬지 않고 낚시만 했던 초여름 가거도의 추억이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네 시간, 다시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다섯 시간을 가면 가거도에 닿는다. 가히 사람이 살 만한 섬이라고 해서 가거도(可居島)인데, 사람보다 물고기가 훨씬 많이 산다. 그 황금어장에서 이른 여름휴가를 보냈다.

`엔젤호`를 타고 우럭과 광어, 쏨뱅이를 잡고, 갯바위에서 굵은 농어를 잡았다. 밤낚시로 통통한 볼락 수십 마리를 낚기도 했다. 나는 루어낚시를 했지만, 찌낚시한 일행들이 낚은 돌돔과 참돔을 회로 먹는 즐거움도 누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오후, 멀리까지 나가는 대신 근해에서 선상 타이라바 낚시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타이라바는 도미를 칭하는 일본어 `다이`와 루어의 일종인 `러버 지그`의 합성어인데, 참돔 낚시에 주로 쓰이는 루어 채비이다. 포인트에 도착해 엔젤호 박현우 선장이 가이드해주는 대로 낚시를 시작했다.

타이라바를 바닥까지 내린 후 살짝 띄워 액션을 줘도 반응이 없어 채비를 회수하려는데 중층에서 퍽, 하는 입질, 제대로 물었다.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지고 팽팽하게 당겨진 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그 엄청난 힘은 부시리가 틀림없었다.

드랙을 조이며 힘겹게 릴을 몇 바퀴 감으면 녀석은 금세 드랙을 차고 나가 나를 허탈하게 했다. 폭발적인 힘에 쩔쩔 매는 동안 팔은 저리고 손이 아파왔다. 낚싯대를 받친 아랫배에 멍이 드는 것 같았다.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 해 좀 더 강하게 낚싯대를 당기는 순간,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초릿대가 하늘로 솟았다. 아뿔싸, 놓쳤다.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허무함은 마치 연인과의 이별 같았다. 온 힘을 다해 겨루던 상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쏟아 부은 힘도 함께 소멸되었다. 내가 당기면 버티던 물고기도, 당신도 없다. 당겨도 당겨도 허공뿐이다. 온 마음과 정성을, 내 간절한 모든 눈빛을 다 가져간 부시리여, 오 연인이여!

허탈함도 잠시, 다시 낚싯대가 휘어졌다. 당장 끊어질 듯한 낚싯줄이 소프라노 소리로 울었다. 놓친 게 아니었나? 아니, 분명히 놓쳤다. 다른 녀석이다. 또 다른 부시리가 물었다. 한 녀석이 먹이를 쫓아 헤엄치면 다른 녀석들이 따라붙는 부시리의 습성 덕분이다. 타이라바를 물고 버티던 녀석이 주둥이에서 바늘을 털며 루어를 뱉어내자 내내 침 흘리며 뒤따라오던 다른 부시리가 그걸 덥석 문 것이다.

또 몇 분 동안의 힘겨루기 끝에 마침내 배 위로 녀석을 끌어올렸다. 미터급 부시리였다. 팔이 후들거리고 어깨가 저렸다. 부시리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앞뒤 가리지 않는 맹목적 욕망의 결과는 파멸이다. 결국 녀석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해체되어 고소한 뱃살회 한 접시로 저녁상에 올려졌다.

남의 것을 탐하는 눈먼 열정과 욕망에의 질주는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선홍빛 부시리회가 내게 말해줬다. 놓친 부시리로부터도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었는데, 온힘을 다해 버티고 버티다보면 절망과 비극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탈주자 부시리가 몸소 가르쳐 주었다.

부시리회에 소주를 마시며 나는, 최선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비록 놓치더라도, 사랑의 근육들이 마음 곳곳에 박혀서, 성실한 사랑의 습관이 생겨서, 다른 사랑이 다가올 때, 그 땐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어보기로 했다. 벌써 지난여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