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장은일본 히로시마 총영사
3년 8개월을 넘긴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 짓고 귀국 준비를 시작하던 중에 접한 고향 포항의 11·15지진 소식에 적잖이 놀랐다. 황급히 대피하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에 황망함을 느꼈고, 내가 일본에서 지진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공포감을 고향 분들도 느끼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필자는 일본 생활을 하면서 구마모토(7.0)와 도토리현 지진(규모 6.6)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그 공포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지진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피해 방지와 복구를 위한 대책을 세밀하게 마련해서 제도화시키고 이 제도를 개개인의 의식에 체화시킨 일본 사회의 자세였다.

지난해 총영사관에 블록 담장을 새로 설치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이면 하루 이틀에 끝날 공사가 일주일이 지나도 끝나지 않아 건설사가 잔꾀를 피우나라는 생각에 공사장을 관찰해 봤다. 그저 블록을 쌓는 게 아니라 블록 안에 철심을 박아 넣고 한 겹씩 시멘트로 정성들여 고정시키고 있던 것이다. 현장 감독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아니, 겉으로 티도 안날텐데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어요?”의 대답에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지진에 무너지지 않는 담을 쌓는 건 건축업자의 자존심 문제입니다” 이같은 일본의 시스템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조속히 취해야 할 조치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 번째, 지진에 맞설 수 있는 내진(耐震) 건축 기준을 한국 현실에 맞게 설정하고 이를 엄격히 실행하는 것이다. 일본의 내진 기준 강화는 그 자체로 대지진의 역사이기도 하다. 2013년 현재 일본의 내진화율은 주택이 82%, 공용건물이 85%를 넘어섰으며 2020년까지는 양자 공히 95%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두 번째, 정확한 정보를 정리하고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다. 포항 지진 뉴스를 보면서 나는 좀 당황했다. 진원에서 터져 나온 지진의 강도인 규모만 뉴스에 나오고 정작 지표면의 지진 강도를 나타내는 진도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 해도 깊이와 지질의 성격에 따라 지표면의 우리가 느끼는 진도는 천차만별이고 각종 지진 대책은 이 진도에 맞춰서 진행되는 법이다.

세 번째, 지진을 비롯한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광역 차원의 조직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현지 지자체의 재난 대비태세를 살피기 위해 히로시마현의 지진 대비 도상 훈련을 참관한 적이 있다. 톱니바퀴.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이것이었다. 현의 위기관리과 등을 중심으로 한 컨트롤타워의 지휘 하에 사태 발생부터 대피, 수습까지 휘하 기초단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네 번째, 시민들 스스로 사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안전의식을 높이고 대피 행동을 몸에 익히는 교육과 홍보가 상시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지진 대비 훈련을 하고 그런 훈련을 통해 재해가 발생해도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장기적 과제로서 전문 인력의 양성을 들 수 있다. 포항 지역 내 미지의 단층의 존재와 지열발전소의 영향 등 학문적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지진이 더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는 인식 하에 체계적으로 전문가를 양성해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관련 학과의 창설을 지원하는 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할 것이고 일본의 지진연구소처럼 역량 있는 연구소도 키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안전으로 가는 길은 아무리 귀찮고 시간과 돈이 아깝더라도 굳이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형성되고 개인들이 그런 합의를 내면에 새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아울러 지진같은 커다란 재해는 특정 개인의 리더십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자가 평소부터 비상시에 대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재해 대비 시스템을 구축해서 사태 발생 시에 신속정확하게 행동할 기반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